[자이툰부대를 가다]‘적극 활동’-‘안전 우선’ 딜레마

  • 입력 2004년 10월 10일 18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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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툰부대의 황의돈 부대장(왼쪽)이 10일 니제르반 바르자니 쿠르드 자치정부 총리에게 지방정부와 주민들을 위한 물품을 전달하고 있다.아르빌=연합
자이툰부대의 황의돈 부대장(왼쪽)이 10일 니제르반 바르자니 쿠르드 자치정부 총리에게 지방정부와 주민들을 위한 물품을 전달하고 있다.아르빌=연합
“코리(KOREA), 코리….”

8일 오후(현지시간) 자이툰부대와 한국 취재진이 이라크 아르빌시와 인근 농촌마을을 방문했을 때 구름처럼 몰려든 쿠르드 어린이들은 이렇게 연호했다. 반가워하기는 어른들도 마찬가지. 이슬람 지역답게 여성들은 길가로 나오지는 않았지만 집 마당에서 수줍게 손을 흔들었다.

자이툰부대를 반기는 쿠르드인의 마음은 진심인 것 같다. 쓰러져 가는 집들, 오물로 뒤덮인 상수도 등 열악한 생활 속에서 경제적 지원을 바라기 때문이다.

한국군은 지금 쿠르드족의 ‘경호’에 힘입어 적어도 테러 위협에서는 안전해 보였다. 그러나 한국군이 ‘참전 명분’과 ‘안전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 가운데 하나를 포기해야 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는 우려도 점차 커지고 있다.

1월 총선을 앞두고 주도권을 잡으려는 다수 아랍족과 자치 또는 독립을 추구하는 소수 쿠르드족의 대립이 심해지고 있다. 쿠르드 내부도 강온파 갈등을 겪고 있다. 더구나 자이툰부대는 조만간 본격적인 영외 대민 재건활동을 벌여야 한다. 안전문제 때문에 대외활동에 소극적이라면 파병의 의미가 퇴색한다.

이런 점 때문에 자이툰부대는 쿠르드인의 환대를 마냥 반길 수만은 없는 딜레마에 처해 있다. 한국군 관계자는 “뛰어난 외교관도 감당하기 어려운 복잡하고 양립(兩立)하기 어려운 과제를 자이툰부대가 떠맡은 것 같다”고 말했다.

▽안전이냐 활동이냐=자이툰부대는 최근 한국에서 구상했던 평화재건 계획을 변경했다. 당초 방침은 현지인의 삶 속으로 파고들어가 재건활동을 벌인다는 것이었다. 연간 500억원이라는 많지 않은 예산으로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병사들이 친화활동 및 재건사업에 적극 뛰어들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

그러나 최근 한국군에 대한 테러 위협이 커지자 정부는 자이툰부대에 “대외활동을 최대한 자제하라”고 지시했다. 주민들과의 접촉을 줄이면서 평화재건 활동을 해야 하는 모순된 상황에 빠진 것이다.

정부의 지침은 한국군에 인명 피해가 생기면 파병 반대론자들의 목소리가 커져 12월로 예정된 파병 연장안이 국회에서 부결될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자이툰부대는 현지 업체들을 고용해 재건활동을 벌여 나갈 방침이다.

그러나 아웃소싱으로는 효과가 미미할 수도 있다. 한 아르빌 시민은 “민주주의가 정착되지 않은 쿠르드의 상황을 감안할 때 자이툰부대의 평화재건비는 지배계층이나 관료들의 배만 불려줄 가능성이 높다”고 염려했다.

▽종파 갈등에 낀 자이툰부대=이라크 아랍인들의 눈에 쿠르드족은 미국과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는 ‘배신자’다. 최근 수니파와 쿠르드족은 서로 상대방을 납치해 참수하는 등 첨예하게 대립하기 시작했다.

특히 아르빌 남부 유전지대 키르쿠크의 갈등은 폭발 직전이다. 키르쿠크는 이라크 북부지역 최대의 유전지대. 이곳의 이권을 잡으려는 종족간 분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정부도 파병 전부터 이런 문제들을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파병 전보다 상황이 훨씬 심각해졌다. 현지에서는 ‘이라크전쟁의 최종판은 아랍과 쿠르드간의 내전’이라는 말까지 나돌고 있다.

쿠르드는 최근 이스라엘의 지원을 받아 민병대를 훈련시키는 등 ‘탈(脫)아랍’ 움직임을 가속하고 있다. 따라서 자칫 이라크 내 아랍인은 물론 중동 전역의 적으로 몰릴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이 지역에 주둔한 한국군의 정치적 입장은 애매해질 수 있다.

한국 정부와 한국군은 성공적 지역 재건활동을 위해 쿠르드의 신망을 얻으면서도 전체 아랍권의 정서를 해치지 않아야 한다는 양립하기 어려운 난제에 직면해 있다. 터키 이란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터키는 쿠르드의 독립 움직임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고, 이란은 이라크 내 시아파를 강력히 지원하고 있다. 9월 말 바그다드를 다녀온 현대건설 이형철 과장은 “대다수 아랍인은 한국이 이라크 평화재건을 한다면서 쿠르드 지역을 선택한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전했다.

이병기특파원 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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