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박경린]고추장과 일본 된장의 조화

  • 입력 2004년 9월 17일 18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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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린
친하게 지내는 일본인 부부가 있었다. 내가 만든 ‘손 요리’를 나눠먹으며 우정을 쌓아가던 어느 날, 부인이 “이혼하고 싶다”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6개월간의 조정기간을 거쳤으나 결국 이혼했다. 원인은 성격 차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들 부부간 ‘성격 차’의 적어도 3분의 1은 ‘맛’에 있었다고 본다. 먹는 것의 차이였다. 아내는 일본 정통의 깔끔한 맛을 즐기고, 남편은 기름지고 걸쭉한 음식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각기 다른 입맛을 조화시키려는 노력은 부족한 듯했다.

그들의 이혼을 보면서 나는 ‘일본에서의 한국음식 만들기 10년’을 되돌아본다. 처음은 ‘재미없음’의 연속이었다. 한국과 일본의 음식은 도무지 조화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은 일본에서 음식 만들기를 즐긴다. 요리를 통해 한국인과 일본인, 이질적인 양자가 사이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일본인들을 한국의 맛으로 끌어올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지난달 한 일본 TV 방송에 나가 음식 만들기 시범을 보였다. 메뉴는 춘천 닭갈비. 닭갈비 요리에서 가장 중요한 게 양념인데, 그 양념을 한국 고추장과 일본 미소 된장을 1 대 1로 섞어 만들었다. 시식을 한 일본인들은 ‘맛있다’를 연발했다. 한국과 일본의 대표적인 장이 서로 어울려 맛의 조화를 이룬 것이다.

이런 시도에 대해 ‘정통이 아니다’라고 타박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두 나라의 맛이 어울리기 위해서는, 나아가 한국의 맛이 세계의 맛이 되게 하려면 초기 단계에서는 우리가 ‘양보’할 수도 있지 않을까. ‘고추장 미소 닭갈비’도 그 양념에서 고추장의 비율을 점차 늘려 가면 일본인도 어느새 한국 정통 닭갈비 맛에 익숙해질 것이다.

깔끔한 맛과 걸쭉한 맛을 서로 고집하다가 헤어진 그 부부의 경우가 내겐 반면교사다.

박경린 음식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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