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켄트 콜더]서울과 워싱턴, 마음을 열 때다

  • 입력 2004년 9월 15일 18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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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미국의 관계가 요즘 미묘하다. 주한미군 감축과 한국의 이라크 파병 문제를 놓고 논란이 끊이지 않더니 한국원자력연구소의 과거 우라늄 농축실험이 새로운 쟁점으로 등장했다.

1982년에 극소량의 플루토늄을 추출한 것이나 2000년에 소량의 우라늄 농축실험을 시도한 것들은 ‘실체’가 없는 단순한 호기심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농축시설을 보유하지 못하도록 규정한 한반도 비핵화 선언과 그러한 실험을 사전에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통지하도록 한 핵 비확산 정책을 인위적으로 위반한 것일 수도 있다.

한국의 핵 의혹은 한미관계뿐만 아니라 6자회담, 그리고 한반도와 국제사회의 관계가 매우 미묘한 시점에 터졌다. 미국이 한국 핵문제에 대해 부드러운 태도로 대처하자 북한은 즉시 미국이 서울에 특혜를 베풀고 있다고 비난하기 시작했으며, 결국 동북아 지역의 군비경쟁 분위기까지 조성하고 있다.

일본의 반응은 날카로웠다. 호소다 히로유키 관방장관은 “이것을 핵무기 개발과 연관짓기는 힘들지만 핵확산금지조약(NPT)의 목적에 비춰볼 때 적절치 못하며 IAEA는 한국의 핵 프로그램 폐기 여부와는 상관없이 소량의 물질이라도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IAEA가 왜 한국원자력연구소에 대한 사찰에 실패했는지 한국 정부가 해명해야 하며 IAEA는 앞으로도 엄격한 사찰을 실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워싱턴은 서울의 핵 실험 파문을 완화시키려 하고 있지만, 백악관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전문가들은 오히려 도쿄의 반응을 걱정하고 있다.

이들은 만일 한국의 핵 상황이 불투명하게 전개된다면 신고도 하지 않고 가공할 만한 핵능력을 개발해 나가는 ‘동북아의 이스라엘’과 같은 국가들이 등장할지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다. 특히 한국이나 북한이 조금이라도 핵 개발 능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간다면 일본은 ‘아시아의 이스라엘’이 되려는 유혹을 받을 수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한국의 핵 실험 소식이 전해진 뒤 의혹을 덜어 주는 방향으로 나갔던 미국 정부의 태도를 지지한다. 한국의 핵 실험은 실제 경미한 듯하다. 일본도 정부 당국자들의 과장된 발언과 달리 실제 반응은 훨씬 느긋하다.

일본의 정책결정 구조는 전혀 일사불란하지 않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 피폭 경험 때문에 핵 문제에 대한 견해 역시 개인에 따라 뚜렷하게 나뉘어 있다.

일본은 해외정책에 있어서 피동적이었으며 워싱턴의 결정에 느릿느릿 응답해 왔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가 대(對)러시아 관계에서는 새롭고 중요한 정책을 만들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핵무장 문제에 관해서는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핵 실험 논란에는 안보 문제를 넘어 정치적인 측면에서 고려해야 할 변수가 있다.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는 한미관계를 지나치게 거칠게 다루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미동맹이 특히 그렇다. 반면 서울의 급진주의자들은 미국이 한반도의 민족공조를 계속 방해해 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울과 워싱턴은 서로를 존중하는 보다 균형 잡힌 대화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미국이 한국의 우라늄 농축문제에 대해 온화한 반응을 보인 것은 적절하고도 의미 있는 대화의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켄트 콜더 존스홉킨스대 교수·동아시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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