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진단]‘시장경제 회의론’ 왜 불거졌나

  • 입력 2004년 7월 22일 18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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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재(李憲宰)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최근 ‘시장경제 회의론’을 제기한 것을 계기로 그동안 ‘시장경제’ 측면에서 논란이 됐던 경제정책과 정책현안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부총리는 19일 밤 서울 용산구 한남동 자택에서 본보 기자와 만나 “내가 경제부총리로 있는 한 순리대로 갈 것이며 이는 바로 시장주의다. 요즘은 한국이 진짜 시장경제를 할 수 있을지에 의문이 들기도 한다”며 ‘시장주의’를 강조한 바 있다.》

▽이제 자동차와 휴대전화도 원가공개 대상?=경제전문가들이 최근 결정된 경제정책 가운데 ‘시장경제’ 측면에서 ‘최악의 사례’로 꼽는 것은 아파트 분양원가 일부 공개 방안이다. 정부와 여당은 최근 공공택지에서 분양하는 전용면적 25.7평 이하의 아파트에 대해서는 분양원가의 주요 항목을 공개하는 방안에 합의했다.

이에 대해 이 부총리를 포함해 ‘경제학의 기본개념’을 알고 있던 사람들은 대부분 “문제가 있다”며 반대했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은 일부 시민단체와 네티즌이 목소리를 높이자 결국 ‘전면 공개’에서 ‘일부 공개’ 쪽으로 타협하면서 이를 수용했다.

한국경제연구원 허찬국(許贊國) 거시경제연구센터장은 “좀 심하게 이야기 하면 정부정책이 ‘인민재판’식으로 결정됐다고 볼 수 있다”며 “이제 자동차와 휴대전화, 나아가 넥타이 가격에 대해서도 소비자가 ‘원가’에 비해 비싸다고 느끼고 원가공개를 요구해도 할 말이 없게 됐다”고 비판했다.


▽잇따라 불거지고 있는 사유재산 침해 논란=재산등록 대상 고위 공직자가 현직에 있는 동안 일정 액수 이상의 주식에 대해서는 정해진 기관에 맡기도록 의무화하는 주식백지신탁제도 논란이 되고 있다.

이는 공직자의 윤리의식을 높이겠다는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헌법이 보장하는 재산권과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다는 것이 경제전문가들의 대체적 견해다. 또 현행 공직자윤리법이 정기적으로 재산 변동사항을 등록토록 한 마당에 새 제도를 무리하게 도입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도 많다.

재산권 침해 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있다. 총자산에서 총부채를 뺀 순자산이 일정 기준 이상인 사람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부유세의 경우 전문가들은 사유재산 침해의 우려가 있으며 대규모 자본 도피를 초래할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 방안은 비록 민주노동당만 찬성하고 열린우리당과 정부 모두가 반대하고 있지만 국회 등에서 공론화되면서 상당한 불안요인이 되고 있다.

정부가 부동산 투기를 잡겠다며 추진 중인 부동산대책 중에서도 이 같은 논란을 불러일으킬 대책이 적지 않다는 비판도 있다.

중앙대 홍기택(洪起澤·경제학) 교수는 “정부가 부동산투기를 잡겠다는 ‘명분’에 매몰돼 사실상 모든 거래를 중단시키는 ‘시장파괴’ 방식으로 부동산정책을 추진하는 경향이 있다”고 비판했다.

▽기업의 목표는 이익극대화인가, 사회공헌인가=자본주의 하에서 기업은 1차적으로 이익극대화를 목표로 한다. 이 과정에서 효율성이 높아져 전체 사회에 돌아가는 후생의 몫이 커지는 것이다.

그런데 노동계 일각에서는 올해 들어 순익의 일부는 소외계층 보호 등에 써야 한다는 사회공헌기금을 들고 나오기도 했다. 이는 기업의 존재 이유를 잘못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공종식기자 kong@donga.com


▼李부총리, 기자 정례 브리핑도 취소▼

최근 ‘시장경제 회의론’ 등으로 여권 내 ‘386’에게 직격탄을 날렸던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말문을 닫았다.

이 부총리는 22일 오전 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하는 등 평소와 다름없이 공식일정을 소화했지만 언론의 관심이 집중됐던 정례브리핑은 23일로 미뤘다.

이 부총리는 당초 “특별히 언급할 만한 정책 이슈가 없다”며 아예 정례 브리핑을 취소하겠다는 의사를 기자단에 전달했다. 하지만 기자단에서 “언론과 재경부간 약속을 파기하는 것”이라며 강력히 반발하자 어쩔 수 없이 하루 늦춰 브리핑을 갖기로 했다.

재경부 당국자는 “브리핑을 하더라도 부총리가 경제 분야가 아닌 다른 쪽에서 언론의 제목이 될 만한 발언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부총리는 자신의 심경을 격정적으로 털어놓은 19일 본보와의 심야(深夜) 인터뷰 이후에는 잇따르는 다른 언론사의 인터뷰 요청에 일절 응하지 않고 있다.

이 같은 ‘침묵’은 뉴스의 중심에서 잠시 비켜서 ‘냉각기’를 갖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그동안 정권의 ‘진보 세력’에 대해 할 말을 다한 만큼 확전(擴戰)은 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보인다.

이 부총리는 이번 주말부터 여름휴가에 들어간다. 가족과 제주로 떠나 29일까지 휴식을 취할 것으로 알려졌다.

송진흡기자 jinh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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