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뿌리읽기]<71>공(孔)과 공(空)

  • 입력 2004년 6월 29일 17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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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을 뜻하는 대표적인 한자에 孔과 穴, 空이 있다. 모두 빈 공간과 구멍을 뜻하지만 그 뿌리는 서로 다른 문화적 층위를 지닌다.

우선 孔은 금문에서 아이(子·자)의 머리에 선이 연결되어 있는 모습을 했다. 이 선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머리의 특정 부위를 지칭하는 지사부호로 보인다.

그래서 孔은 어린아이의 ‘숨구멍’에서 유래한 글자이다. 아이의 숨구멍은 생명의 중요함과 신비함이 동시에 스며있는 곳이다. 그래서 孔은 단순히 구멍이라는 의미 외에도 孔德(공덕·큰 덕)처럼 ‘깊다’나 ‘위대하다’는 뜻을 가진다. 그리고 구멍이라는 뜻을 나타낼 때에도 毛孔(모공)이나 瞳孔(동공)처럼 인간의 신체와 관련된 부위에 주로 쓰인다.

그러자 일반적인 구멍을 나타내기 위해 다른 글자가 필요했는데, 穴과 空이 그것으로 모두 고대중국의 생활환경과 연관되어 만들어졌다. 穴은 소전체에서 동굴 집을 그렸다. 갑골문이 주로 사용되던 황허 유역은 질 좋은 황토로 이루어졌으며, 돌을 구하기가 힘들어 주로 황토 언덕에다 굴을 파 집으로 사용했다.

동굴 집은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며 습도까지 조절되는 친환경적인, 최고의 거주지였다. 더구나 황토로 되었으니 그 장점은 우리도 너무나 잘 있고 있다. 다만 穴에서는 황토굴이 무너질까 양쪽으로 받침대를 댄 모습이 두드러지게 표현되었다.

空은 穴에 工이 더해진 모습인데, 工은 소리부 겸 의미부이다. 工은 이전에도 말했지만 황토를 다지는 절굿공이를 그렸다. 황토 평원인 황허 강 유역에서는 황토를 다지는 절굿공이가 가장 대표적이고 중요한 工具(공구)였으므로 이것이 도구를 대표하는 글자가 되었다. 空은 이러한 도구(工)로 황토언덕에 구멍(穴)을 파 생겨난 空間(공간)을 뜻한다. 이후 하늘을 뜻하게 되었고, 텅 빔을 의미하는 철학적인 용어로도 쓰였다.

한편 孔에 손(爪)의 모습이 더해진 글자가 乳인데, 갑골문에서 손(爪)을 내밀어 아이를 가슴에 안고 젖을 먹이는 어미의 모습을 대단히 사실적으로 그렸다. 다만 乳에서의 孔은 보다 높은 추상화된 의미를 얻지 못하고, 그냥 단순한 아이만을 뜻한다.

하영삼 경성대 교수 ysh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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