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산책]‘엽기 그녀’의 어설픈 변신? 영화 ‘여친소’

  • 입력 2004년 6월 3일 17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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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아이필름
사진제공 아이필름

《영화 ‘내 여자 친구를 소개합니다’(이하 ‘여친소’)를 괴롭힌 것은 ‘엽기적인 그녀’(2001년)와 관련된 일종의 콤플렉스일 것이다.

‘엽기…’를 통해 ‘한류’(韓流)의 주역이 된 배우 전지현과 곽재용 감독이 비켜갈 수 없는 운명이기도 하다. 실제 ‘와호장룡’ ‘영웅’의 프로듀서로 유명한 홍콩 ‘에드코 필름’의 빌 콩 대표가 이 작품의 제작비 전액(350만 달러·약 42억원)을 투자하면서 내건 유일한 조건은 ‘엽기 콤비’의 재결합이었다.》

차라리 이 작품을 ‘여친소’가 아니라 ‘엽기2’로 못 박을 수 있었다면 이런 갈등에서 훨씬 자유롭지 않았을까?

영화 ‘여친소’는 ‘정체성’ 문제로 갈등한다. 자신의 출발점인 ‘엽기…’에서 멀어지려는 욕망과 흥행을 위해 ‘엽기…’ 코드로 다시 돌아와야 하는 현실의 괴리 때문이다.

영화는 도입부에 서울 야경을 배경으로 고층빌딩에서 투신하려는 경진(전지현)의 모습을 길게 보여주면서 시작된다. 자신을 그녀의 남자 친구라고 밝힌 명우(장혁)의 내레이션이 이어진다.

‘여친소’는 두 사람의 첫 만남부터 사랑과 이별 뒤의 이야기를 그린 전형적인 멜로 영화다. 가장 사랑하는 이를 남겨 놓고 다른 세상으로 떠나야 했던 한 남성의 고백이자, 사랑을 잃은 한 여성의 방황과 추억을 담고 있다.

자유분방하고 적극적인 여순경 경진과 자상하고 사려 깊은 교사 명우. 경진은 사건을 수사한다며 좌충우돌하고, 명우는 그녀를 쫓아다니며 뒷수습하느라 정신이 없다.

‘여친소’는 이미 도입부에서 명우의 죽음이 암시된다. 영화의 결말이 무엇이냐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뻔한 이야기를 얼마나 설득력 있게 풀어갈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그런 면에서 영화의 전반부는 매력적이고 나름대로 성과를 거뒀다. 이미 ‘비 오는 날의 수채화’ ‘클래식’에서 보여준 곽 감독의 풍부한 감성과 감각적인 영상이 빛을 발한다. 가수 유미가 부른 밥 딜런의 ‘Knocking on Heaven’s Door’가 흐르는 도입부, 비 오는 날 연인의 만남, 수갑을 찬 채 세수를 하는 모습 등 몇몇 장면은 모래성을 쌓듯 연인 사이에 흐르는 감정의 다양한 색깔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매우 작위적 설정이면서도 쉽게 고개를 돌릴 수 없는 ‘곽재용 표’ 영화의 장점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여친소’는 정말 ‘품위 있게’ 끝날 기회를 계속 저버렸다. 후반부 명우의 죽음과 경진의 방황에서 스크린과 객석간 감정의 교감은 클라이맥스에 올랐지만 정작 영화는 그 지점에서 계속 내려오지 않겠다고 버틴다. 명우가 영혼의 모습으로 여러 차례 등장하는 것은 ‘큰’ 사족(蛇足)이다. 결국 ‘정말 이래도 안 울래’라는 식의 흥행에 대한 콤플렉스가 음악, 영상, 감정이 모두 넘치는 ‘과잉의 영화’를 낳고 말았다. 전지현과 장혁은 ‘엽기…’와 비교되는 부담스러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매력적인 개성을 보여준다. 3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김갑식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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