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만나는 시]최두석, “느티나무와 민들레”

  • 입력 2004년 5월 2일 18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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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와 민들레

- 최두석

간혹 부러 찾는

수백 년 묵은 느티나무 아래

민들레 꽃씨가

앙증맞게 낙하산을 펼치고

바람 타고 나는 걸 보며

나는 얼마나 느티나무를 열망하고

민들레에 소홀하였나 생각한다

꿀벌의 겨울잠 깨우던 꽃이

연둣빛 느티나무 잎새 아래

어느 새 꽃씨로 변해 날으는

민들레의 일생을 조망하며

사람이 사는 데 과연

크고 우람한 일은 무엇이며

작고 가벼운 일은 무엇인가 찾아본다

느티나무 그늘이 짙어지기 전에

재빨리 꽃 피우고 떠나는

민들레 꽃씨의 비상과

민들레 꽃 필 때

짙은 그늘 드리우지 않는 느티나무를 보며

가벼운 미소가 무거운 고뇌와

함께 어울려 사는 모습 떠올린다

- 시집 ‘꽃에게 길을 묻는다'(문학과 지성사) 중에서

한 그루 느티나무로부터 더위에 지친 나그네는 그늘만 보고, 장롱 재목 고르는 목수는 둥치만 보고, 조경업자는 수형만 볼 것이요, 날마다 기둥을 오르내리는 개미는 평생 한 눈에 느티나무를 담을 수 없겠지요만 어떤 시인의 안목 앞에서는 느티나무의 원경과 민들레의 근경이 한꺼번에 잡히기도 하는군요.

어지간히 꽃구경, 나무구경 좋아하는 저도 수없이 바라본 느티나무요 민들레건만 저 이야길 들으며 새삼 무릎을 칩니다. 느티나무도 제 발 밑 꽃잎 상할까봐 새 옷을 더디 입는구나. 저 시인이 느티나무로부터 ‘크고 우람한 일’을 배우고, ‘민들레’로부터 ‘작고 가벼운 일’을 배울 동안 나는 그저 나비처럼 향과 색에 취했을 뿐이로구나. 이제 느티나무 곁을 지날 때마다 자꾸만 그 발 밑을 살피게 되었습니다.

반칠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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