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침에 만나는 시]차창룡, “나무 물고기”

  • 입력 2004년 4월 11일 18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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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물고기

- 차창룡

물고기는 죽은 후 나무의 몸을 입어

영원히 물고기 되고

나무는 죽은 후 물고기의 몸을 입어

여의주 입에 물고

창자를 꺼내고 허공을 넣으니

물고기는 하늘을 날고

입에 문 여의주 때문에 나무는

날마다 두들겨맞는다

여의주 뱉으라는 스님의 몽둥이는 꼭

새벽 위통처럼 찾아와 세상을 파괴한다

파괴된 세상은 언제나처럼 멀쩡하다

오늘도 이빨 하나가 부러지고 비늘 하나가

떨어져나갔지만

- 시집 ‘나무 물고기’(문학과 지성사) 중에서

어째 생긴 모습이 이상타 했다. 물고기도 아니요, 나무도 아닌 것이 자꾸만 오색단청 구름을 머리로 치받으며 솟구치는 걸 보았다. 이제 보니 애비는 나무요, 에미는 물고기라, 네 출생이 간 데 없는 사생아였구나.

얼마나 큰 외로움이었으면 창자를 꺼내어 허공을 넣고, 천 번 물 밖을 솟구쳐 여의주(如意珠)를 얻었으랴. 장하고 장하련만 정작 여의주 입에 물고 제 몸은 한 뼘도 여의(如意)치 못하니 웬일이냐. 매 타작에 여의주를 놓치면 그나마 허공을 놓칠 것이요, 악물고 있으려니 한 생이 복통이로구나.

쯔쯧 혀 차고 돌아서려니 문득 ‘번뇌 망상이 보리(菩提-깨달음)’라 했더냐? 아하, 복통이 삶이요, 복통이 여의주로구나. 오늘에야 비로소 저 나무 물고기의 연목구어(緣木求魚)를 알 것도 같구나. 천 년을 날아도 그 하늘, 새로 젊은 스님들아, 대를 이어 저 나무 물고기의 아랫배를 후비렷다.

반칠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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