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기의 눈높이 육아]성폭행 상처로 고통받는 아이

  • 입력 2004년 3월 21일 17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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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여느 날과 다를 바 없었다. 영이는 유치원에 갔고 엄마는 집안일을 하고 동생을 돌봤다. 유치원에서 돌아온 영이의 얼굴이 좀 어두워 보였지만, 아이는 아무 일도 아니라고 했고 엄마도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늦은 밤 목욕을 시키려 영이의 팬티를 벗기자 역한 냄새가 나고 팬티에 이물질이 묻어있는 것이 아닌가? 놀라서 아이의 ‘잠지’를 살펴보았더니 발갛게 부어있었고 아이는 그제야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는 불길한 예감에 아찔해졌다.

공동체의 보호망이 사라지고, 사회적으로 고립된 인간이 늘어나고, 인터넷 등 온갖 매체에서 성적 충동을 자극하는 세상에서 아이들은 그 어느 때보다 큰 위험에 노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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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욕과 열등감으로 이글거리는 변태들에게 아이들은 너무나 쉬운 희생자인 것이다. 더구나 아동 성폭행의 가장 두려운 사실은 대부분의 가해자가 아이와 친했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아동 성폭행의 치료는 아이가 이제는 안전하다고 느끼게 해주는 것으로 시작된다. 아이가 안심하려면 부모가 담대해져야 한다. 고통스럽다고 부모가 어쩔 줄 몰라 하면 아이는 죄의식과 수치심 때문에 사실을 말하려 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아이는 심적 고통 때문에 불안해하고, 괜한 고집을 부리고, 심한 경우 자해를 하기도 한다.

다음 단계는 아이를 위로해주는 것이다. 위로를 하려면 먼저 아이가 자신의 마음을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아이들은 의지할 수 있다고 여겨야 마음을 털어놓는다.

부모가 괴로워 폭행에 대해 말하기 꺼려하면 아이도 눈치를 보며 말하지 않을 것이고 상처는 아물지 않을 것이다. 두려움, 수치심, 분노를 충분히 토로하고 위로받았다고 여기게 해줘서 아이의 잘못이 아니라 미친개에게 물린 것임을 인식시켜 줘야 한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아이가 불쌍하다고 해서 너무 관대해지면 아이가 오히려 짜증을 내는 등 부작용이 생긴다. 원래의 규칙과 생활 패턴을 유지하여야 한다. 또한 부모의 죄책감과 분노 때문에 아이에게 악영향을 주지 않도록 부모도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

마지막으로는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교육을 시켜야 한다. 성기는 부모나 의사 선생님 이외에는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고, 되도록 혼자 다니지 말라고, 아저씨가 함께 가자고 하거나 오빠들이 팬티를 벗으라고 하면 소리치며 도망가서 이르라고 가르쳐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에게 충분한 관심을 주고 어떤 일이건 부모와 이야기할 수 있게 열린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성폭행 피해 아동들은 부모와의 관계가 원만치 않았던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을 따라간 것이다. 성폭행을 당했다고 아이가 앞으로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피할 수 있는 잔이라면 좋겠지만, 이미 일어난 일이라면 어떻게 그 상처를 빨리 떨쳐버리느냐가 중요하다.

소아신경정신과 전문의·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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