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욱 칼럼]인민재판식 친일청산 말라

  • 입력 2004년 2월 24일 15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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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방송 (MBC)PD수첩이 지난 17일 방영한 친일청산 문제 특집프로는 일부 내용이 지나치게 편파적이어서 국민 여론을 크게 오도(誤導)할 우려가 있다고 여겨진다. 논란이 분분한 역사적 사실이나 인물에 대해 학자들은 자신의 연구결과와 역사관에 입각하여 그 나름의 결론을 내릴 수 있겠지만 언론매체는 모름지기 논쟁적인 문제를 대할 때는 불편부당한 입장에 서서 균형 잡힌 보도와 논평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해야만 국민의 알권리를 존중하고 나아가서는 친일파청산문제 같은 중대한 민족문제에 관해 올바른 여론을 형성할 수 있는 것이다.

일방적 친일파규정 캠페인 안돼

그럼에도 불구하고 MBC의 그 프로는 일부 인사들에 대하여 처음부터 다짜고짜 인민재판식으로 친일파로 단정해 놓고 프로를 진행한 것은 언론의 정도에서 벗어난 제작태도라는 평을 피하기 어려울 것 같다.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인물을 친일파라고 판정하려 한다면 당연히 그에 대한 반증도 제시해야 할 것이고 그리고 그 반증이 진실이라는 증명이나 또는 진실이 아니라는 반증(反證)도 함께 소개해야 할 것인데 그런 대목들이 결여되어 있으므로 일방적인 인민재판식 친일파 규정캠페인이라는 인상을 줄 수있다.

예컨대 인촌 김성수 선생의 경우 그의 친일 행적으로 매도되고 있는 일제 말기의 학병권고나 담화나 기고문이나 또는 연설등 내용이 그 당시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 및 경성일보의 기자들이 자의적으로 적당히 만들어낸 것이라는 증언이 있었으며 몇몇 단체에의 가입도 전쟁의 광란 속에서 조선총독부가 일방적으로 이름을 집어넣은 것이라는 증명도 물론 있었기에 해방 후 반민특위(反民特委)의 친일파 조사의 대상에서도 거론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MBC는 그런 대목들은 송두리째 무시한 체 매일신보와 경성일보의 기사만을 수집하여 그 기사가 만들어진 배경, 환경 정황 등에 대한 정확을 기한 파악 노력 없이 친일파로 단정하는 데에만 급급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는 것은 유감이다. 물론 인촌 선생도 고인이 된지 벌써 반세기 전의 일이고 이런 기사들을 쓴 기자들도 다 고인이 된 지금에 와서 그런 증명도 반증도 이들에 대한 확인도 다 할 수 없다는 것은 건전한 상식으로 생각하여도 그런 친일파 논란은 논란 자체가 넌센스 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하기야 MBC의 그 프로도 일방적인 매도가 아니라 불편부당한 공정성을 지닌 제작이라는 것을 과시하기 위함이었는지 인촌선생 김활란박사 등의 측근인사들로서 지금까지 생존한 분들로 하여금 김성수선생과 김활란박사의 생존시 업적에 대한 찬양을 하게 한 대목을 막간에 삽입시키기도 하였으나 그 후에는 마구 난타(亂打)하였으니 눈가리고 아옹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왜 인촌만을 친일파로 모는가.

MBC제작진이 친일파 자료 수집에 온갖 노력을 다 기울인 공로는 인정된다. 그러기에 김구선생이 설립한 민족정경연구소의 친일파(親日派)군상(群像)이라는 친일파에 대한 조사연구 보고서를 모를 리가 없을 터인데도 이를 모조리 외면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유감 된 일이다. 이제까지의 친일파에 대한 조사연구 보고서들 중에서 가장 권위 있는 것이어서 이를 읽고서도 인촌선생에 대해서 그토록 난도질을 했다면 선의의 해석이라 할 수 없다.

민족정경연구소의 보고서는 친일행위에 대한 유형을 두 가지로 나누었는데 1, 자진해서 친일행위를 한 자와 2, 피동적으로 끌려서 친일하는 체 한 자로 대별 한 다음 이를 다시 활동의 정도를 따져서 네 가지로 분류해서 네 가지의 분류 중 갑(甲)류는 경찰의 박해를 면하고 신변의 안전 또는 지위 사업 등의 유지를 위하여 부득이 끌려 다닌 자로 나누고 그 예로는 인촌 김성수 유억겸 등을 들었다. 좌익 측에서는 인촌이 전시 협력을 많이 했다고 친일파로 몰고 있으나 조선총독부가 만든 단체에의 가입은 저명한 인사들을 본인도 모르게 이름을 집어넣는 것이 상례화 되어 있었다. 당시에 인촌이 <나도 모르게 내 이름을 인용한 것이어서 책임질 수 없다>고 딱 부러지게 부정하지 못한 흠은 있지만 그 점에 있어서는 여운형이나 안재홍이나 조만식이나 다 딱 부러지게 말을 못한 것은 마찬가지인데도 김성수 만을 유독 친일파로 몰아 부치는 저의(底意)가 무엇인지 수상한 느낌이 든다.

朝光은 <親日誌>가 아니다.

그리고 방응모선생을 친일파로 몰기 위함이겠지만 그 당시의 유일한 월간지 조광을 친일지로 몰아 부치는 것 또한 마땅치 않다. 물론 신동아도 신가정도 삼천리 등 모든 월간지를 폐간 시키면서 유독 조광만을 남겨 주었으니까 친일지라고 속단될 수도 있겠으나 조광의 애독자가 되어서 매달 조광을 학수고대하던 내가 그 때를 회상할 때 그당시의 좋은 기억으로 남는 것은 조광을 읽으면서 친일지라고 느낀 적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김태준(월북 사학자)씨의 연안행(延安行) 기사와 조선일보 편집국장을 지낸 함상훈씨가 1945년 조광3월호에 일본 정치를 분석하면서 일본의 패전이 코앞에 다가왔음을 대담하게 암시한 기사가 검열에서 용하게 통과한 것을 기뻐하던 추억 때문인지 조광을 친일지라고 매도하는 데는 조용한 분노마져 느낀다. 오죽하면 조광을 친일지로 몰아서 친일파의 구성 요소를 추가 하려고 했을까하는 연민마져 느낀다.

지금 민족정의를 높이 세우자고 하면서 육십년 전에 친일 행위를 한 인사라면서 일방적으로 이를 매도하는 캠페인을 벌여서 친일파 민족반역자 법의 제정을 추진하여 이번 선거에서 친일파 자손들을 낙선시키고 친일파의 자손들을 차별화하자고 주장하는 매체가 있으니 안타까운 노릇이다. (끝)

이동욱(전 동아일보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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