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친일 규명법' 이분법적 斷罪 말아야

  • 입력 2004년 3월 3일 00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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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반민족 행위 진상규명 특별법’이 어제 국회를 통과했다. 국회 추천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하는 9명의 위원회가 향후 3년 동안 일제강점기 친일행위자에 대한 자료 수집 및 조사보고서를 작성하고 사료를 편찬한다는 것이다.

친일행위자를 가려내 민족정기를 살리자는 대의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광복 이후 59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는데도 아직도 친일 청산이 문제되고 있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 법이 그동안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은 실효성과 공정성 면에서 심각한 문제의 소지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의 정치 사회적 환경은 권력 내부로부터 지배세력을 교체한다는 발언이 거리낌 없이 나오고 보수와 진보의 대결양상이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민족정기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사회갈등과 분열을 야기한다면 예기치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국회가 이런 일파만파의 불가측성을 도외시한 채 이 법을 통과시킨 것은 신중하지 못한 처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법의 목적은 일제 치하를 살았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친일 여부를 가리는 것이다. 그 대상은 일제하에서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의 중요 직책을 맡았던 이들을 비롯해 매우 광범위하다. 길게는 한 세기 전, 짧게는 60년 전의 일을 파헤치는 일이라 많은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다. 더구나 대상자들은 거의 사망한 상태다.

이들에 대해 일부 자료에만 의존해 친일 행적을 따지는 것이 타당한 일인지 의문이다. 관련 자료가 얼마나 신뢰성이 있는지도 문제다. 친일 인사로 판정받으면 당사자는 물론 그 후손에게 미칠 영향은 적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민감한 사안에 과거 자료만으로 객관적 진상규명이 가능할지 우려된다.

보다 근본적인 의문은 지금의 잣대로 식민지 시절을 재단하는 것이 얼마나 공정할 수 있겠느냐는 점이다. 일제 지배는 36년간 지속됐다. 언제 독립이 이뤄질지 모르는 암담한 상황이었고 일제 말기는 태평양전쟁이라는 특수상황이었다. 특히 일제는 폭압에 의한 직접 통치로 일관하며 황국신민을 강요했다.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것을 빼놓고는 국내에 남아 있는 것 자체가 최소한 ‘소극적 친일’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현실이었다. 엄혹했던 당시 상황에 대한 이해와 접근 없이 친일이냐 아니냐를 이분화(二分化)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광복 이후 지속되어 온 친일 문제는 순수한 역사청산의 의미보다는 정치적으로 제기되고 이용된 적이 많았다. 친일파니, 친일파 후손이니 하는 꼬리표가 정적을 죽이거나 흠집을 내는 데 악용되기도 했다. 민족지도자 김구(金九) 선생도 광복 직후 “친일분자 숙정은 마땅하지만 자기의 애증에 따라 용서할 만한 자도 기어이 매장하고자 한다”고 개탄하지 않았던가. 요즘처럼 편협한 정치풍토에서는 이 같은 이분법적 사고가 더욱 기승을 부릴 우려가 높다.

친일 규명은 ‘법률적 처벌’이 아닌 ‘역사적 처벌’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일은 역사가들에게 맡기는 게 바람직하지 정부나 국회가 나설 일이 아니다. 이 법이 자칫 대의의 본질을 떠나 정치적으로 악용된다면 적대적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다. 우리가 ‘이분법적 단죄’를 경계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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