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칼럼]김학록/먼 아들…아까운 이웃

  • 입력 2003년 12월 24일 18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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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록
해마다 겨울이면 동네 육교 아래에서 남루한 옷차림에 커다란 함지박 하나 놓고 야채를 팔던 한 할머니가 생각난다. 할머니는 몽땅 팔아도 1만∼2만원어치가 될까 말까 하는 야채를 펼쳐 놓고 일년 내내 그 자리에 앉아 주름지고 작은 손으로 도라지나 콩을 까곤 했다.

어느 날 우연히 그 할머니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자제분이 없느냐”고 묻자 할머니는 대답 없이 난처한 표정만 지으셨다. 행여 귀가 안 들리는 건 아닌가 싶어 다시 큰 소리로 말하자 할머니는 깊은 한숨을 쉬더니 마지못해 말문을 여셨다.

“아들이 하나 있어. 그런데 미국으로 유학간 뒤 연락도 되지 않고 돌아오질 않아.”

그 순간 필자는 몹시 당황했다. 괜히 여쭤봤다는 생각 한편으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자식 된 입장에서 80세가 넘은 노모를 차가운 길거리에 내버려두고 외국에서 자기만 잘 살면 그만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해 연말 동네 마을금고에서 쌀을 모아 불우이웃을 돕는 행사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 할머니가 떠올랐다. 마을금고 이사장에게 그 할머니에게 쌀을 줬으면 좋겠다고 건의했으나 이사장은 “자녀가 있는 사람에겐 쌀을 줄 수 없다”는 게 아닌가. 고령에 길거리에서 고생하니 재고해 달라고 사정한 끝에 쌀 20kg을 주기로 했다. 필자가 직접 쌀을 들고 할머니를 찾아가 전달했다. 할머니는 “너무 고맙다”며 몇 번이고 인사했다.

며칠이 지났을까. 우리 집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나가보니 뜻밖에도 그 할머니가 서 있었다. 집을 알려준 적도 없는데 어떻게 찾아왔느냐고 하자 “내 자식보다 고마운 사람을 어찌 내가 잊겠느냐”며 여기저기 수소문 끝에 알아냈다고 했다. 그리고는 수건에 곱게 싼 무언가를 내 손에 쥐어주셨다. 다름 아닌 삶은 계란 두 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크고 값진 선물이었다.

요즘 다시금 날씨가 추워지니 그 할머니 생각이 난다. 그 뒤에도 한동안 육교 밑을 지켰던 할머니는 이제 보이지 않는다. 금년 봄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뒤늦게 들었다. 우리에게 ‘자식’은 무엇이고 ‘이웃’은 무엇인지 한동안 머리가 복잡했다.

김학록 경기 남양주시 평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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