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서 만난 삼국유사]변산 의상봉

  • 입력 2003년 11월 27일 16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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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봉을 찾아간다. 전북 부안군의 변산반도 한가운데, 새만금이니 핵폐기장이니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세상의 시끄러운 소리에 시달릴 만도 하건만, 의상봉 정상의 깎아지른 절벽은 의연하기만 하다.

왜 의상봉을 찾아가는가? 진표(眞表)라는 이는 삼국유사 안에 백제 출신 승려로 유일하게 실려 있다. 물론 그가 활약한 때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고도 50여년이 흐른 다음이다. 굳이 따지자면 진표는 망한 나라의 유민이었다. 이 비운의 승려가 족적을 남긴 곳이 의상봉이라는 말을 바람 편에 들었다.

삼국유사가 전하는 그의 모습은 아무래도 백제 미륵불교의 전통선상에 있어 보인다. 금산사에서 출가했다가 스승의 명을 받들어 불사의암(不思議庵)이라는 곳에 가서 행했던 수행법을 보면 그렇다. 바위에 몸을 부딪치며 온몸을 학대하면서 정진하거나, 심지어 높은 절벽 위에서 몸을 날려 미륵보살 만나길 기원하는 수행법은 ‘점찰경’에 근거한 이른바 박참법(撲懺法)이라는 것이다. 미륵신앙의 전형적인 모습 가운데 하나다.

의상봉 인근에 있는 변산해수욕장은 제철은 아니어도 그다지 쓸쓸하지 않다. 해변을 산책하는 연인이나 가족들이 늘 있고, 앞 바다의 섬들도 아름답기만 하다.

오랫동안 나는 그런 진표가 수행했다는 불사의암이 어딘지 궁금했다.

삼국유사는 그곳을 변산의 선계산(仙溪山)이라 했다. 신선이 사는 계곡이라는 뜻일까. 그러나 후세에 그런 이름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다.

우연히 부안군 상서면의 개암사(開巖寺)에 들렀다가 대웅전 뒤의 울금바위에 원효굴이 있고, 거기를 부사의방(不思議房)이라 부른다는 사실을 알았다. 죽염치약 산지로 유명한 이 절에서 불사의암을 찾아내나 싶었는데, 삼국유사가 일러주는 지리적인 조건과는 아무래도 맞아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부안읍에서 변산 바닷가 쪽으로 30번 국도를 타고 가다 바다가 보이는 지점쯤에 이르러 비득마을이라는 곳을 만났다. 바로 의상봉으로 올라가는 초입이다. 이 의상봉 정상에 기도할 만한 좁은 터가 있고, 거기를 부사의방이라 부른다고 했다.

국립공원 변산반도 한가운데 자리 잡은 해발 506m 높이의 산. 그래서 얕은 산이라 할지 모르나, 이 봉우리에 오르면 계화면에서 시작하는 드넓은 평야와, 군산과 위도에 이르는 서해가 한눈에 들어온다.

의상봉에는 산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만 은밀히 알려진, 풀숲과 가시나무 사이로 가느다랗게 이어지는 등산로가 숨겨져 있다.

말이 등산로이지 간간이 매달아 놓은 리본을 놓쳤다가는 그대로 길을 잃을 판이다. 마을에서 오래 산 이들의 말을 들으니, 옛날 이곳이 국립공원이 되기 전에는 승려나 무당들이 많이 찾았고, 아예 터 잡고 사는 이도 있었다고 한다.

아무래도 이 의상봉이 바로 선계산이요, 산꼭대기 바위투성이 아래 좁은 자리가 불사의암인 것 같았다.

진표는 어떻게 이 봉우리에 오를 수 있었을까? 한 발 한 발 옮길수록 불가사의 그 자체다. 드디어 이 봉우리 끝에서 만난, 사람들이 부사의방이라 부르는 곳을 보고서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깎아지른 절벽이 내 눈을 따라 밑 모르게 추락하는데, 정상 바로 아래 몸 하나 겨우 누일 만한 공간이 바위 사이로 보였다. 기왓장 몇 조각뿐, 지금은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나 거기라면 삼국유사에서 말하는 진표의 불사의암이 틀림없다. 더욱이 계곡은 깊고 넓어서 신선들이나 놀러 다닐 만해, 이 또한 선계산이라는 이름 바로 그대로 아닌지.

금산사로 돌아가 절을 키운 진표는 거기 머물지 않고 속리산으로, 강원도 강릉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속리산의 법주사(法住寺)를 세운 이는 그의 제자 영심(永深)이었고, 영심에게 와서 배운 심지(心志)는 대구 팔공산의 동화사(桐華寺)를 세운다. 3대에 걸친 사제간이 삼남의 명찰을 세운 주인공들이다.

문득 이 바위 위에서 몸을 날렸을 진표를 떠올린다. 그가 번지 점프하러 이곳에 올랐을 리 없다. 저 벼랑 아래로 몸을 날리며 미륵보살이 자기를 보살피리라 믿었다. 그토록 목숨을 걸고 만나야 했던 미륵보살은 그에게 대체 무엇이었을까.

대답 대신 겨울을 부르는 찬바람만 희미하게 귓가를 스쳐갔다.

고운기 동국대 연구교수 poetko@hanmail.net

:촬영노트:

불사의암 가는 길은 쉽지 않다. 하지만 의상봉 동쪽 깎아지른 바위벽에서 삼국유사의 기록과 일치하는 듯한 불사의암의 모습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절벽 아래로는 내변산의 여러 봉우리들이 늘어섰고, 서쪽으로는 멀리 서해바다가 아스라한 풍경.

암자가 바람에 날려가지 않도록 암벽에 쇠말뚝을 박아 묶었다는 기록도 확인해야겠기에 밧줄을 타고 불사의암으로 내려갔다. 과연 바닥에는 기둥을 박았던 흔적이 있고, 암벽에도 쇠말뚝이 박혀 있었다. 유적지 사진을 찍으면서 최고의 재미를 느끼는 순간이다.

그러나 아쉽다. 저 아래 봉우리들이 낮은 구름에 싸여 있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양 진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tophoto@korea.com

▼'여행지서 만난 삼국유사' 의상봉 주변엔…▼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변산반도는 볼거리가 풍부하다.

가장 남쪽 곰소에서 약간 내륙으로 꺾으면 내소사(來蘇寺)가 있다.

이 절의 안팎과 절 뒤로 펼쳐진 병풍 같은 바위산의 아름다움은 말로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 특히 관음봉 밑의 직소폭포는 변산팔경의 하나다. 당나라 장군 소정방이 와서 이름이 내소사가 되었다는 전설은 잘못 전해진 것이다.

다시 해안가로 나오면 격포.

채석강이 펼쳐지는 신비로운 해안이다. 여기까지 이르는 30번 국도는 해안도로인데 군데군데 산과 바다가 펼치는 절경이 감탄을 자아낸다.

격포의 수성당은 이 지역의 민속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곳이다. 수성당의 주인 개얌할미는 서해 바다를 지키는 여신이다. 개얌할미는 발 하나가 바다를 덮을 만큼 크다는데, 바다를 걸어다니며 고기잡이배를 지켜준다고 믿어진다. 또 딸 여덟을 낳아 조선 팔도로 보내 무당이 되었다고 하며, 그로 인해 무당의 선조가 됐다는 전설도 있다. 이 수성당에서는 매년 정월 초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 제사를 지낸다.

수성당 앞바다가 바로 핵 폐기장 건설로 문제가 되고 있는 위도로 넘어가는 뱃길.

격포에서 좀더 북쪽으로 올라가면 변산 해수욕장이다. 대천, 만리포와 더불어 서해안 3대 해수욕장의 하나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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