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포커스]할인점10년…가족쇼핑 시대 열어

  • 입력 2003년 11월 9일 18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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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할인점이라는 새로운 유통업태가 등장한 지 10년이 지났다. 1993년 11월 서울 창동에 신세계이마트가 첫 점포를 연 이후 ‘싼 가격’과 편의성을 앞세워 해마다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해온 할인점(9조760억원)은 올 상반기 처음으로 백화점(8조6065억원)을 제치며 최대 유통업태 자리에 올라섰다. 미국에서는 50년, 일본에서는 49년이 걸린 할인점의 백화점 추월 현상이 한국에서는 10년 만에 실현된 것. LG투자증권 박진 애널리스트는 “할인점에 대한 소비자들의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어 할인점 시장은 2006년까지 연평균 17.7%의 높은 성장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본격화된 EDLP 시대=할인점이 가져온 최대 파급효과라면 EDLP(every day low price) 시대, 즉 언제나 싼 가격에 물건을 구매할 수 있는 ‘상시 최저가격’ 시대를 열었다는 점이다.

제조자로부터 소비자에 이르는 유통 단계의 단축과 대량 구매에 따른 가격협상력 등에 힘입어 판매가격이 다른 유통업태에 비해 평균 20% 정도 저렴해진 것. ‘싼 가격, 좋은 품질’뿐 아니다. 한꺼번에 다양한 상품을 살 수 있는 원스톱 쇼핑, 재래 유통망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다양한 상품구색 등도 소비자를 흡인하는 주요 요인이다.

이 같은 EDLP 시대의 도래는 물가를 떨어뜨린다. 한국은행은 할인점이 가져온 소비자물가 하락효과는 1996∼1999년 4년간 모두 1.79%에 이른다고 밝혔다.

산업의 주도권도 제조업체에서 유통부문으로 넘어왔다.

할인점 점포 한 개에서 하루에 최대 15억원씩을 팔아치우는 상황에서 할인점이 가격인하를 요구하면 제조업체는 응하지 않을 수 없다. 제조업체가 끼워팔기 등의 횡포를 부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는 시장의 주도권이 생산자에서 소비자로 넘어오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국형 할인점’의 개발= 한국에서 할인점은 상품만 늘어놓고 파는 곳이 아니다. 즉석조리식품 코너를 비롯해 영화관, 어린이놀이방, 레스토랑, 미장원, 병원, 약국, 사진관, 세탁소, 지자체 민원센터, 서점, 문화센터, 동물병원, 커피전문점 등 다양한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온 가족이 다같이 나와 물건을 고르는 가족쇼핑 문화도 이래서 생겼다.

외국계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이러한 한국형 할인점에 대해 “할인점이 아닌 새로운 유통업태”라고 평가한다.

한국형 할인점의 원조 이마트는 현재 영업이익률이 나머지 업체들의 2, 3배 수준인 7%에 이른다. 프랑스계 한국까르푸, 미국계 월마트코리아, 영국계 홈플러스 등 외국계 할인점도 이 같은 상황을 무시할 수 없게 됐다. 대규모 편의시설을 갖춘 신규 점포를 내거나 기존 점포에 수십억∼100억원의 돈을 들여 리모델링하는 식으로 대응하는 것. 한국 땅에서 장사를 해야 하는 만큼 한국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출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방에서 더 큰 충격= 주차공간이 넉넉한 중소도시의 할인점은 복잡하고 좁은 대도시 할인점에 비해 쇼핑이 비교도 안 될만큼 쾌적하다. 재래시장과의 격차도 크고 문화공간으로 기능할 요인도 훨씬 많다. 그러다 보니 중소도시에서는 할인점이 유통산업의 판도를 완전히 뒤집어놓고 만다.

이는 집값으로도 반영된다. 2001년 부산에 한 대형 할인점이 들어서자 주변 단독주택과 아파트 시세가 오픈을 전후해 평당 가격이 300만원에서 600만원으로 두 배나 올랐다.

워낙 유통혁명의 충격이 크다 보니 반응도 갖가지다.

2001년 충북 충주에서는 시청 이전에 따른 구시가지의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지역상인과 주민 등 600여명이 할인점을 조기개점해 달라는 탄원서를 해당 업체에 제출해 결국 뜻을 이뤘다. 생활편익, 지역상권 활성화, 고용창출, 부동산값 상승, 세수확대 등을 기대한 것. 일반적으로 점포당 600∼800명이 근무하는 할인점이 지역에 들어서면 전체 직원의 70%가량을 지역주민 중에서 채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할인점 개점으로 인한 인근 중소상인 몰락이 사회문제화하는 경우도 많다. 특히 유통시스템이 낙후된 곳일수록 갈등은 크다. 이마트는 올해 전북에서 ‘지역 할인점들을 지역법인화하라’는 요구에 적지 않은 곤욕을 치렀고, 홈플러스는 대전에 신규 점포용 부지 매입을 거의 완료했으나 대전시의 대형유통점 입점제한 조치에 따라 개점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성동기기자 esprit@donga.com

박용기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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