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프로젝트]<17>美 에버글레이즈 생태계 복원

  • 입력 2003년 9월 18일 18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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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다주 남부의 아열대성 습지대는 총면적 2만3000km²로 우리나라 국토면적의 4분의 1가량. 이곳 호수나 강은 한국의 그것들과는 전혀 다르다. 에버글레이즈의 원류인 오키초비 호수는 넓이가 1800km²로 서울의 3배나 되지만 물의 깊이는 3m밖에 안 된다. 호수에서 하류까지의 기울기가 50km당 1m에 불과하기 때문에 물은 고여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물론 홍수 때는 강이 범람하고 흐름도 빨라진다. 에버글레이즈 국립공원은 면적 5929km²로 서울의 10배. 소나무가 자라는 곳은 해발 1∼2m, 가장 높은 곳이 해발 2.5m다. 1947년 지정된 미국 최초의 자연공원이며 지난해 방문객은 120만명. 1976년 국제생물권보호구로, 1978년 야생동물보호구로 지정됐다. 1987년 세계의 주요 습지 중 하나로 지정됐으나 주변인구 급증, 개발공사 등으로 생태계가 심하게 파괴돼 1993년 ‘위험에 처한 세계 유산’으로 지정됐다.》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고층건물 숲을 빠져나와 남서쪽으로 한 시간여 차를 달리면 사방이 탁 트인 에버글레이즈 국립공원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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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다른 국립공원과는 달리 볼거리가 없다. 소나무 등 작은 나무와 풀뿐이다. 가까이 다가가야 보이는 물은 흐르지 않고 고여 있다. 네덜란드에서 관광 온 라인더트 분 일행은 뭔가를 기대하며 늪지대를 기웃거려 보지만 별 소득이 없다.


1961년 개발로 인해 직선화된 키시미강 모습(오른쪽)과 이를 복원해 자연형태로 구불구불하게 바뀐 현재의 모습. 1947년 미 의회는 홍수피해를 줄이고 남부 플로리다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뱀이 기어가는 모양의 키시미강을 인위적으로 정비토록 했고 이 때문에 생태계는 위험에 처했다. -에버글레이즈=홍권희기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따금 백로나 해오라기가 멀리 보일 뿐이다. 그러고 보니 사람도 없다. 공원 홍보담당 리처드 쿠크는 “에버글레이즈는 건기인 11~4월이 생태관광에 좋다”면서 “물이 줄어들면 악어를 비롯해 동식물을 많이 만날 수 있다”고 말한다.

공원 끝 플라밍고에서 운하를 따라 늪지대를 돌아보는 유람선에 올랐다. 관광객은 12명. 안내원 라브가 “악어 가운데 크로커다일은 사납고 앨리게이터는 수줍어한다”며 손으로 물속을 가리켰지만 앨리게이터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 주위엔 온통 맹그로브 숲이다. 바닷물에서도 살 수 있는 이 나무는 허리케인을 견디기 위해 뿌리가 뒤엉켜 있다.

방동사니 같은 풀, 갈대, 맹그로브, 악어, 펠리컨, 표범…. 이들이 ‘풀의 강’이란 뜻의 에버글레이즈의 주인공들이다. 그곳에서 인간은 주인공이 아닌 듯하다.

미국 남동쪽에 아래로 뻗은 반도 플로리다의 남부 에버글레이즈는 120년 전까지는 완벽히 동식물이 주인공이었다. 우기에는 홍수가 나 강 유역이 모두 물에 잠겼고 건기에는 강물이 줄었다. 동식물도 우기와 건기에 맞춰 살아갔다. 수천 년 동안 만들어지고 유지된 생태계였다.

사람들이 에버글레이즈에 삽을 들이댄 것은 1880년대. 농업과 도시생활을 위해 홍수에 대비한 배수시설을 정비했다. 운하와 제방이 만들어졌다. 오키초비(‘큰물’이라는 뜻) 호수의 물이 빨리 대서양으로 빠지도록 한 것이었다.

허리케인으로 호수가 범람하는 피해를 본 뒤엔 호수를 제방으로 둘러싸버렸다. 1947년 미 의회는 홍수피해를 줄이고 남부 플로리다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중남부 플로리다(C&SF) 프로젝트를 의결했다. 이 프로젝트에 따라 꾸불꾸불 뱀이 기어가는 모양의 키시미(‘긴 물’이란 뜻)강은 반듯하게 정비됐다. 강 길이는 165km에서 90km로 줄어 ‘긴 물’이 ‘짧은 물’로 변했다. 강폭은 2~3km에서 9m로 줄어들었고 야트막하던 깊이는 10m가 됐다.

홍수 위험이 없어진 에버글레이즈는 살기 좋은 곳이 됐을까. 천만의 말씀. 생태보고서는 이렇게 지적한다. “20여년간의 개발 끝에 습지가 사라져 에버글레이즈 크기가 절반으로 줄었다. 하루에 600만m³의 물이 그냥 바다로 흘러가버려 습지 물의 양이 70% 줄었으며 수질도 악화됐다. 이곳에 살던 생물 68종이 위기에 빠졌다.”

우기와 건기의 수량 차가 줄어들고 물길이 바뀌면서 생태 리듬이 흐트러진 탓이다. 예를 들어 물이 닿지 않는 곳에 알을 낳는 앨리게이터는 물이 많아지자 새끼를 키울 수 없게 됐다. 물이 줄어든 지역에서 달팽이가 줄어들었고 이것을 먹고사는 달팽이솔개도 함께 수가 줄었다. 이 지역 조류는 1930년대에 비해 93%가 사라졌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드넓은 습지를 적시는 물이 줄어들자 건조한 땅에서 잘 자라는 식물이 번창했다. 바뀐 생태계에 잘 적응하는 외래 어류와 식물은 토종들을 위축시켰다. 이런 사실은 미 의회의 지시에 따라 C&SF 프로젝트를 종합 재검토한 결과 드러난 것이다. 플로리다만의 산호초도 3분의 1이 죽었고 작년 조사로는 120곳 중 100곳이 병에 걸린 상태다.

이 프로젝트로 예방한 홍수피해는 현재까지 5억달러로 추산된다. 하지만 이것을 얻기 위해 생태계를 파괴해 더 큰 피해를 불러왔다는 잘못을 미국인들은 뒤늦게 깨달았다. 인구가 계속 급증하는 남플로리다에서 환경재앙을 피하는 방법은 파괴된 생태계를 되살리는 길뿐. 인간이 에버글레이즈에 변형을 가한 지 100년 만에 복원 논의가 시작된 것이다.

과학적인 조사 결과를 토대로 마련된 에버글레이즈 종합복원계획(CERP)안은 1999년 7월 성안돼 의회에 제출됐다. 의회는 이를 수자원개발법에 포함시켰다. CERP는 우리 돈으로 9조3600억원에 해당하는 총 78억달러(1998년 추정치·연간 1억8200만달러의 유지비 별도)가 투입돼 30년 넘게 추진하는 방대한 구상이다. 총 68건의 프로젝트가 담겨 있다. 키시미강은 이 계획에 따라 다시 구불구불한 옛 모습을 되찾았고 제방은 철거됐다. 공사를 하기 위해 정부는 이 지역의 땅을 대거 사들여 다시 국유지로 만들었다.

이 계획으로 에버글레이즈는 100년 전처럼 동식물의 낙원으로 복원이 될까. 복원 태스크 포스에 참여했던 전문가들은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잃었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기술적으로도 에버글레이즈에 평상시 물을 많이 공급하려면 다른 물 사용을 줄이거나 홍수 때 물을 빨리 빼줄 시설이 필요한데 이것 역시 생태계를 파괴할 가능성이 높다. “지금 남은 것이라도 건강하게 지켜내는 것이 최선”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CERP는 △물의 수용 보관 이동 사용방식을 바로잡는다 △자연을 복원한다 △만들어진 환경을 변형시킨다는 세 가지 목표를 갖고 있다.

인류 사상 최대의 생태계 복원작업인 CERP의 개별 프로젝트들은 대부분 2020년까지 마무리된다. 복원계획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2010년이면 점진적이지만 중요한 성과를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파괴처럼 복원에도 오랜 시일이 걸려 아마 25~50년은 지나야 에버글레이즈가 ‘풀의 강’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뉴욕=홍권희특파원 konihong@donga.com

▼복원계획 특징…전문가 100여명이 주도▼

▽과학기술 총동원=30여개 기관에서 생화학 생태학 경제학 공학 등 전문가 100여명이 6년간 계획 마련에 참여했다. 가설과 모델을 세우고 현장점검을 하는 전 과정에 과학적 합의가 필수적이었다. 각 분야 100여명의 학자들이 복원계획을 중간 점검할 수 있는 측정방법을 개발했다. 이들은 수시로 워크숍을 열어 구체적인 논점들을 토론한다. 국립과학원에 설치된 위원회는 복원을 위한 이론 제공을 맡았다. 아직도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플로리다만의 병든 산호초를 살리는 데 깨끗한 물이 필요하다는 주장과 농장에서 바다로 흘러드는 질소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 있는 것이 예.

▽공개 논의=종합계획에는 이해집단을 포함한 모든 당사자의 접근과 참여가 보장됐다. 복원계획의 구체적인 내용과 추진상황 및 평가결과는 웹사이트(www.evergladesplan.org)를 비롯해 다양한 형태로 공개된다. 평가결과에 따라 그 다음 계획은 언제나 바뀔 수 있다. 과학자들은 “누구든 새로운 복원방안을 제시해 주기를 희망한다”고 밝히고 있다.

▽다자 참여=계획 수립에는 연방정부, 플로리다주 정부, 군(軍), 대학 및 연구소, 카운티, 보호구역 내 인디언 부족, 민간단체 등이 모두 참여했다. 인디언들은 수질오염 정도를 정기적으로 체크해 보고하는 일을 맡는 등 일을 나눴다. 복원비용은 연방정부와 주정부가 절반씩 부담한다. 시민단체들은 어린이 환경교육 등을 통해 생태계의 중요성을 가르치고 있다.

▼에버글레이즈 생태계 약사▼

△1880년대 후반 남 플로리다에서 배수시설 첫 공사

△1890년대 초반 농업과 도시생활을 위한 에버글레이즈 배수지역 건설

△1929년 4대운하를 포함해 700km의 운하와 제방공사 완료

△1928년 허리케인으로 2000명 사망 피해가 난 뒤 오키초비 호수 주변 제방건설 추진

△1947년 에버글레이즈 국립공원 지정

△1948~71년 중남 플로리다(C&SF) 프로젝트에 따라 1600km의 운하와 1150km의 제방, 200여곳의 수로통제시설 건설

△1983년 환경단체 등 에버글레이즈 살리기 운동 시작

△1992, 1996년 C&SF 프로젝트 전면 재검토

△1993년 유네스코, 세계 위험 문화유산 지정

△1993년 남 플로리다 생태계 복원 태스크포스 설치

△1999년 의회에서 에버글레이즈 종합복원 계획(CERP) 승인(78억달러를 투입해 30년간 복원작업 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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