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에세이]남정현/며느리 '명절 증후군' 깨뜨리기

  • 입력 2003년 9월 8일 18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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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명절. 아이들은 떠들썩한 분위기와 맛난 음식을, 부모님은 오랜만에 보는 자손을, 남편들은 푹 쉴 수 있는 연휴를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며느리들은 이런 행복한 상상만 할 수 없다. 명절이 여자, 그중에서도 며느리들에게 ‘고난의 시기’가 된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괴로움은 생각에 그치지 않고 병적 증세로 나타나기도 한다. 명절을 맞는 며느리들은 흔히 두통이나 불면증을 호소한다. 그뿐만 아니라 신체적 통증이 악화되고 자신감이 없어지며, 심할 경우 우울하고 원통한 심정을 토로하기도 한다. 가족 내에서 자신의 위치와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 문제로 갈등을 겪으며 허탈감과 굴욕감을 느끼기도 한다.

한국인은 일반적으로 며느리가 명절에 일만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이는 명절 고유의 의미도 아닐뿐더러 발전하는 사회와도 맞지 않는 생각이다. 전통사회에서 명절은 마을 공동체 구성원이 모두 모여 즐기는 날이었다. 각자 집안 행사를 끝내면 마을의 중심이 되는 집이나 장소에 모인다. 여자는 음식을 장만하고, 남자는 축제에 쓰일 놀이기구나 행사계획을 짜는 등 역할 분담을 하면서 모두가 함께 명절을 보냈다.

그러나 요즘 명절은 흩어진 핵가족이 모여 얼굴을 보는 행사로 전락했다. 많은 사람들이 먹을 음식은 작은 부엌에서 한두 사람 손으로 장만되는 현실이다. ‘시집간 죄인’이라고 집안일은 모두 며느리가 전담한다. 모두 쉬는 명절에 혼자 일만 하게 되니 며느리들은 명절이 싫어질 수밖에 없다.

전통사회에서도 남녀가 함께 일하고 즐겼는데, 남녀평등을 지향하는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여자들만 죽도록 일한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여자, 특히 며느리들의 명절 부담을 덜어줘야 할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더 이상 한두 사람의 힘으로 가족 전체를 이끌어갈 수 있는 사회가 아니다. 현대사회는 핵가족 안에서도 부부가 함께 경제활동을 해야만 하도록 변하고 있다. 따라서 남녀 모두 시간적 정신적 육체적 여유가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둘째, 우리는 현재 남녀평등 교육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렇다면 놀이문화 역시 남녀평등을 지향해야 한다.

셋째, 요즘은 가사분담을 당연시한다. 물론 남녀 역할을 구분할 수는 있지만, 서로 상대의 어려움을 이해하면서 협조해야 조화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다.

넷째, 우리 사회는 전통적 가치관에서 서구적 가치관으로 옮겨가고 있다. 그 와중에 편의에 따라 양쪽 가치관과 생활습관 중 하나를 택해 남에게 강요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이기적인 태도에 불과하다.

결국 며느리 증후군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족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명절 때 받은 스트레스로 인해 여자들이 갖게 된 마음의 앙금은 대화로 푸는 게 좋다. 이때 중요한 것은 명절연휴 동안의 어려움을 이해해주고 잘못은 솔직히 인정하는 태도다. 상대방의 불편이 자신의 가치관이나 사고방식에서 나온 것은 아닌지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자신의 잘못을 모르고 있다면 다툼이 잦고 오래 갈 것이다.

결국 며느리들의 명절 스트레스는 인간관계에서 오는 것이므로 그들의 입장을 이해해 주는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당연한 일을 왜 문제 삼는가’라며 대충 넘기는 일은 없는지 돌아봐야 한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남정현 한양대병원 신경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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