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프리즘]신지호/미녀응원단 '후유증' 크다

  • 입력 2003년 9월 2일 18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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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절 많던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가 지난달 31일 막을 내렸다. 미녀응원단을 앞세웠던 북한대표단은 “민족공조를 지켜낸 정치적 금메달을 목에 걸고” ‘장군님의 품’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들이 돌아간 자리에는 왠지 씁쓸함이 남는다. 무엇보다도 이번 행사를 치르면서 깊어진 ‘남남(南南)갈등의 골’이 우리의 마음을 어둡게 한다.

분단의 벽을 넘는 교류, 그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남북 화해협력 증진이라는 숭고한 목표달성을 위해서도 그렇지만, 문제 많은 북한체제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 南南갈등… 北은 정치통합에 이용 ▼

역사적으로 볼 때도 힘이 세고 자신 있는 쪽이 교류의 활성화를 요구했다. 반면 약한 자는 소극적 수동적 자세를 보였다. 따라서 우리는 북한에 ‘보다 많은 교류’를 요구해야 한다. 이를 반대하는 자는 ‘냉전의 화석’으로 지탄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우리를 답답하게 만드는 것은 이 자명한 이치가 현재 남북관계에 제대로 적용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여기서 우리는 교류에 임하는 남북 양측의 의도와 자세를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주지하듯이 북한 김정일 정권은 ‘자본주의 황색바람’의 유입을 경계하면서 필요한 것만 골라서 하는 ‘모기장식 개방’을 대남교류의 가이드라인으로 삼고 있다. 그들이 교류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경제적 이득만이 아니다. 그것 못지않게 정치적 효과를 중시하고 있다.

작년 가을, 남한 사람들의 눈은 부산아시아경기대회에 응원 온 북한 ‘미녀군단’에 쏠려 있었다. 그들의 신선한 몸동작과 구호는 ‘남남북녀’를 그리는 뭇 총각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등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런데 이 미녀응원단이 북한에 돌아가 제일 먼저 접한 것은 ‘정치교육’이었다. 북한말로 ‘총화’라 일컬어지는 이 과정을 통해 자본주의 바이러스를 퇴치하는 ‘두뇌세탁(brainwashing)’ 작업이 진행됐다. 한 달여의 교육이 끝난 뒤 그들은 북한 각지의 강연회에 투입되었다. 거기서 그들이 전한 핵심적인 메시지는 “조국해방전쟁 때도 점령하지 못한 부산을 이번에 점령하고 왔다”는 것이었다. 같은 시기 조선중앙TV는 ‘남조선’에서 제작된 것이라며 미녀응원단에 열광한 나머지 ‘장군님을 칭송하는 남조선 인민들의 모습’이 담긴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이처럼 김정일 정권은 대남교류를 내부의 정치적 통합력을 높이는 호재로 절묘하게 활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떠한가. 김대중 정부가 시작한 햇볕정책은 ‘접촉을 통한 변화’를 추구해 왔다. 이른바 ‘평화적 이행전략’이다. 그래서 DJ 정부 초기 당시 이종찬 국가정보원장은 “햇볕정책은 알고 보면 무서운 정책”이라고 큰소리쳤다. 결국 지난 5년간 남과 북은 동상이몽(同床異夢)의 게임을 벌여온 셈이다. 그 대차대조표는 어떤 것일까.

“햇볕정책으로 남북한 사이에 진정한 의미의 화해와 협력이 이루어졌는지 여부를 우리 모두 이 시점에서 심각하게 성찰해봐야 합니다. 햇볕정책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자세와 체제에 아무런 변화가 없고 오히려 북한은 이를 계기로 민족공조를 앞세우며 남한사회에 친북 및 반북 세력간의 분열, 즉 ‘남남’ 분열을 유발하고 있는 것은 분명히 지적돼야 할 문제점입니다.” 인터넷신문 업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김수환 추기경이 한 말씀이다.

▼동상이몽 남북교류 냉철한 성찰을 ▼

지난해 아시아경기대회 때 왔다간 미녀들이 그랬듯이 엊그제 북으로 돌아간 미녀들도 한 달 뒤면 북한 전역을 돌며 “이번에는 대구도 점령하고 왔을뿐더러 남조선 내 보수반동 세력들을 제압하고 왔다”며 떠들고 다닐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선전은 김정일 정권에 호재로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김정일 정권의 소원대로 남남갈등이라는 심각한 후유증을 앓고 있다. ‘수구 꼴통’과 ‘친북 좌익’의 이전투구는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대다수 국민은 이제 이런 싸움에 넌더리를 치고 있다. 그동안 침묵했던 다수가 나서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신지호 서강대 겸임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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