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이한순/ ‘낮은 그림’ 높은 울림

  • 입력 2003년 8월 29일 17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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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5일부터 덕수궁 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17세기의 네덜란드 회화전은 얼핏 제목만 듣고서는 멀고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18세기 이전의 서양미술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는 국내 사정으로는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기도 한데, 바로 이런 맥락에서 이번 전시가 갖는 의미를 우선 짚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론적 의의에 몰두하기보다 실제로 전시되어 있는 작품들을 먼저 둘러보면 그 생생한 아름다움과 편안한 그림 소재들로 인해 미술의 문외한들도 감탄사를 연발하게 된다.

▼‘生의 깊은 맛’ 소박하게 전달 ▼

여기에는 전시 작품의 우수한 보존 상태가 크게 한몫을 하고 있다. 300여년 전에 그려졌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깨끗한 화면들이 우리를 맞이하는 것이다. 네덜란드 본국의 대표적 미술관들을 방문하더라도 이만큼 보존 상태가 훌륭한 작품들을 한꺼번에 감상하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이번에 작품들을 대여해 준 마우리츠하위스미술관(헤이그)의 자부심은 충분히 이해되고도 남는다. 전시 작품 선정에 공을 들인 덕수궁 미술관측의 노고도 역시 높이 인정될 만하다.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당연히 렘브란트다. ‘깃 달린 모자를 쓴 남자’는 최고작 가운데 하나는 아니지만 렘브란트의 예술성을 감상하기에 손색이 없다. 명료한 명암 대비, 대담한 붓 처리, 인물의 순간적인 심리 묘사 등 극적인 효과는 금속의 반짝이는 표면 묘사 같은 사실적 질감 표현과 더불어 렘브란트 고유의 양식적 특징에 속하며, 궁극적으로 화면 공간 안에 살아 있는 개별 인격을 창조해 낸다.

사실 네덜란드 황금시대의 회화가 누리는 국제적 명성은 렘브란트뿐 아니라 그에 못지않게 높은 예술적 수준을 갖추고 있는 마이너 장르의 그림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현대의 극사실주의 회화를 연상시키는 꽃그림이라든가, 전형적인 네덜란드의 주위 환경을 묘사하고 있는 자연주의 풍경화, 중산층 시민의 사소한 일상생활을 포착한 장르화 등 그 어느 것도 빠짐없이 독특한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하는 것이다.

게다가 이렇듯 단순한 아름다움을 전하는 듯 보이는 작품들이 사실은 세부 모티프의 상징성을 통해 인간의 일반적 삶과 연관된 교훈이나 가르침들을 전달하고 있다는 사실을 차츰 깨닫게 되면 그 매혹은 더욱 커진다. 예를 들어 마치 만져질 듯 실감나게 그려진 정물들은 역설적으로 삶의 덧없음을 일깨우기 위한 것이고, 얀 스테인의 풍자 그림은 우스꽝스러운 방식으로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실적인 양식과 소박한 소재, 그리고 일반 생활과 연결된 메시지는 이렇듯 네덜란드 황금시대 회화의 핵심적 특징으로 꼽히며, 당시 유럽 미술의 주조를 이루던 바로크 회화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성격의 것이다. 프랑스, 이탈리아 등의 절대 군주들이 강한 중앙 집권을 추구하며 근세 국가의 기반을 다지는 동안, 16세기 말에 독립공화국으로 발전한 이 저지대국가에서는 부유하고 진보적인 자유시민들이 정치, 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중심 주체가 되어 문화의 꽃을 피웠다.

▼ 난해한 현대미술에 한 수 가르침 ▼

17세기 네덜란드의 미술은 한마디로 이러한 시민의 미술이며, 여타 유럽 지역에서 귀족에 의해 선호되던 궁정 미술과는 분명한 대비를 이룬다. 탄탄한 지적 배경과 세련된 취향을 갖춰야만 감상할 수 있는 이상적 엘리트 미술과 달리, 익숙한 주변이 눈앞에 살아 있는 듯 느껴지는 네덜란드의 작은 그림들은 고도의 학식을 요구하지도 않고 특별한 상상력을 동원할 필요도 없이 편안하고도 즐겁게 일상의 가르침을 이야기한다.

이러한 시민의 미술이 낮은 가격에 엄청난 양으로 제작되면서도 장르별 전문화를 통해 높은 예술적 질을 유지했던 현상은 소비자의 조건과 눈높이에 맞추는 시장경제 원리를 통해 설명될 수 있다. 복잡한 사회에서 난해할 수밖에 없는 현대미술도 어쩌면 여기서 한 수 배울 점이 있을 것 같다.

이한순 홍익대 교수·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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