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춤추는 심청 러 사로잡다

  • 입력 2003년 8월 19일 18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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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자랑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공연장인 '마린스키극장'에서 한국창작무용 ‘심청’이 선보여 문화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 관객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김형찬기자
러시아가 자랑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공연장인 '마린스키극장'에서 한국창작무용 ‘심청’이 선보여 문화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 관객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김형찬기자
15일 저녁 7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내의 마린스키 극장 앞.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씨에도 약 2000명의 관객들이 모여들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300주년 기념 ‘한국주간’ 행사 중 하나로 마련된 창무회(이사장 김매자)의 창작무용 ‘심청’을 보러 온 사람들이었다. 관객 중에는 이 지역 교포인 고려인들과 한국 유학생들도 적잖이 눈에 띄었지만 러시아인 관객들이 다수였다. 이날 참석한 현지 교민들은 “러시아가 자랑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공연장에서 한국 무용을 선보인 데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고 입을 모았다.

2001년 국내에서 초연됐던 ‘심청’은 판소리 ‘심청가’의 주요 대목을 춤으로 표현한 작품. ‘춤으로 보는 판소리’ 또는 ‘눈으로 보는 소리’를 표방해 주목받았다. 판소리가 춤과 만나 소리와 몸짓을 서로 밀고 당기며 이어가는 사이, 판소리 이면에 담겨 있는 극적인 상상력이 춤을 통해 시각적으로 형상화됐다.

김학용의 북과 서정금의 소리와 함께 열린 이날 무대에서는 심청이 태어나는 ‘심청가’의 첫 대목이 펼쳐졌다. 생명의 탄생을 알리는 무용수들의 군무가 무대에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이어 심청의 어머니 곽씨 부인이 숨지는 대목에서 안타까운 죽음을 위로하는 상여소리에 맞춰 백의(白衣)의 굿판이 펼쳐졌다. 생명과 죽음이 한 무대에 공존하며 긴장을 고조시켰고, 관객들은 고요한 긴장의 환희를 함께 느낄 수 있었다.

판소리 구절구절마다 담긴 흥겨운 가락과 해학은 무용수들의 경쾌한 몸짓으로 표현돼 흥을 돋웠다. 장면이 끝날 때마다 갈채를 보내던 관객들은 막이 내리자 박자를 맞춰 기차박수로 답했다. 이날 공연을 관람한 안드레이 골로바치씨(19·상트페테르부르크대 3년)는 “음악과 춤, 무대미술이 환상적 조화를 이루어 한국적 색깔이 어떤 것인지 잘 보여준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1991년 창작무용 ‘비단길’을 가지고 마린스키극장 무대에 섰던 김매자 이사장은 “당시는 한국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공연해 걱정이 많았지만, 이제는 이곳에도 우리 문화가 알려져 있어 예전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공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김형찬기자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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