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민의 투자여행]<14>평상심부터 유지하자

  • 입력 2003년 5월 20일 18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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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딴 돈을 들고 방으로 간 건 동생이 올라가고 한 시간쯤 뒤였을 것이다. 방문을 열자 축 처져 있던 가족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로 집중됐다. 가장 먼저 말문을 연 사람은 역시 아내. “여보, 어떻게 됐어요?” 황급한 질문에 난 애써 태연하게 말했다. “자, 여기 300달러.” “이게 뭐예요?” 재차 묻는 말에 난 짧게 답했다. “동생 잃은 만큼은 찾았다.”

그 순간, 주체할 수 없이 피어나던 함박꽃 그 미소…. 누가 아내에겐 남편 사랑이 필요하다 했던가. 하늘이 알고 땅이 아느니 여자들은 돈을 더 좋아하지 않던가. 아내는 까무러칠 듯이 행복해 했고, 점잖은 계수씨도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아이들도 덩달아 환호를 했다. 아내는 극구 사양하는 계수씨 손에 곧바로 그 돈을 쥐어 주었고, 난 도로 방을 나갔다. 이제 끼니를 해결해 줘야 할 차례였기 때문이었다. 동생은 역시 고수답게 ‘오늘은 안 되는 날’이라며 그냥 방에서 쉬겠다고 했다.

그렇게 다시 전쟁터로 간 나는 또 300달러를 더 벌었다. 여자들이 ‘사랑, 사랑’ 하지만 알고 보면 다 빈말. 세상 어느 아내가 빈손에 사랑만 들고 가는 남편을 그처럼 반길까. 아내는 너무 좋아 다시 한번 까무러쳤고, 방안엔 온통 웃음꽃이 피었다. 세상에 간사한 게 인간, 웬만큼 훈련이 안 되고서야 주책없는 이 감정 변화를 못 숨기는 법. 그리고 이렇게 요동치는 감정이 결국 이성을 혼미하게 하여 패전을 초래하는 법. 그러니 잃든 따든 감정의 평정을 유지할 줄 모르는 사람은 투기든 투자든 애초 시작을 하지 않는 것이 옳으리….

그날, 좀 늦긴 했어도 우린 아내의 원(願)대로 ‘공돈’을 가지고 시끌벅적 저녁을 먹었다. 식사 도중 동생은 “형님, 그 동안 정말 많이 변했다”며 처음으로 칭찬을 해 주었다. 그리곤 옛날 유타에서 ‘도박은 되도록 하지 마라’고 일침을 줬던 속뜻을 그제야 일러주었다.

얘기는 3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등학교 시절, 나는 늘 구슬을 가지고 놀았다. 구슬치기도 종목이 여럿인데 난 일찍부터 프로를 선언, ‘짤짤이’를 전문으로 했다. 아마추어 종목인 구멍 넣기, 삼각형 등은 왠지 싫었다. 첫째, 손끝이 둔해서 둘째, 너무 많은 시간과 정력이 소모돼서 그랬을 것이다. 겨우 구슬 몇 개 따먹자고 땅에 구멍 파야지, 손에 흙 묻혀야지, 허리 구부려야지, 신경 써서 조준해야지…. 그리고 맞았네 안 맞았네, 어느 구멍 안 갔다 왔네 어쩌네, 구질구질 잡음도 많지. 이에 비하면 짤짤이는 역시 화끈한 놀이. 앉아서 손만 두세 번 흔들면 금방금방 승부가 나는, 진정한 ‘남자의 게임’ 아니던가.

김지민 시카고투자컨설팅 대표 cic2010@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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