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일과 꿈]남윤인순/딸들의 미래를 위하여

  • 입력 2003년 5월 7일 19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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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단체에서 상근직으로 활동해 온 지 15년이 되었다. 후배들이 가끔 묻는다. 여성운동을 하면서 느끼는 보람과 꿈이 무엇이기에 쉼 없이 활동하고 있느냐고, 지치지 않느냐고.

정말 무슨 힘이 나를 이곳까지 오게 했을까. 소위 운동권이 거치는 과정을 통과의례처럼 겪었다. 유신독재 하이던 1977년 학생운동을 시작해 노동운동과 여성운동으로 이어졌다. 처음에는 시대적 사명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누가 등 떠미는 것도 아닌데 나는 왜 이 자리에 있을까. 돌이켜보면 위기도 있었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사회적 자아와 개인적 자아가 분열하지 않으면서 신나게 살아온 것 같다.

▼여성운동 15년에 나자신도 성장 ▼

나를 가장 신나게 한 것은 여성운동을 통해 나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었다는 점이다. 세상을 보는 안목과 판단 능력,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 조직관리 능력 등에서 스스로를 계속 발전시키면서 운동가로서, 또 사회적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덕목과 자질을 채워 나갔다. 결혼 후 딸을 낳고 육아와 경제생활의 어려움으로 운동을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갓 태어난 딸의 미래를 생각하면 더더욱 여성운동가로 살아가는 것이 옳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제적 어려움이 있지만 사회 변화를 일궈내는 통쾌함이 있기에 ‘운동’이라는 일도 꽤 매력 있는 ‘직업’이다. 아직 우리 사회에는 운동을 직업적으로 해 나갈 수 있는 제도와 문화가 갖춰져 있지 않지만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미래사회에는 국가의 기능이 축소되고 시민사회의 역할이 커지게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때가 되면 여성단체나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것이 누구나 선택할 수 있는 보편적 직업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그중에서도 여성운동은 단지 여성운동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여성운동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꿈을 꿀 수 있고 여럿이 힘을 합쳐 그 꿈을 이뤄낼 수 있다. 바로 여성단체 일을 통해 나는 일과 꿈을 완벽하게 일치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내게는 가장 신나고 기쁠 때가 변신, 변화, 변혁을 이룰 때다. 여성 개개인이 가정과 사회에서 겪는 아픔과 불만들이 여성단체로 모여들어 영유아보육법, 성폭력특별법, 가정폭력방지법 등을 탄생시켰다. 그 결과 보육시설이 늘어나고, 여성에 대한 폭력도 수없이 공론화됐다. 최근에는 호주제 폐지, 성매매방지법 제정을 위해 다양한 국민 캠페인, 국회의원 설득 활동 등을 벌이고 있다. 여성단체에 전화해 격려해 주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들을 때, 내가 하는 일이 이룰 수 없는 꿈이 아니라 함께 꾸는 꿈이기에 현실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여성운동을 통해 일과 꿈을 연계하는 데는 걸림돌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이제는 사명감만으로 운동을 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여성운동, 시민운동이 누구나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 되려면 비정부기구(NGO) 활동에 대한 사회적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시민단체에 대한 기부제도, 운동가를 위한 장학제도, 여성단체들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여성 NGO센터 등 이런 시스템이 갖춰져 활성화되면 여성단체라는 일터가 더욱 즐거워질 수 있을 것이다.

▼성매매방지법 제정 등 할일 많아 ▼

그간 우리 사회의 변혁기를 거쳐 오면서도 여성운동가들의 외침과 몸짓은 무척이나 외로웠다. 그러나 ‘양성 평등사회’를 꿈꾸는 많은 분들과 함께할 수 있어 나는 행복하다.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 그리고 환경운동연합에서 사무총장으로 일하는 남편, 부족한 엄마를 믿어준 딸이 운동의 동반자로서 힘이 되어 주고 있다. 비록 가족끼리 따뜻한 저녁 한 번 나누는 일이 쉽지 않지만 가족과 함께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일을 할 수 있어 행복하다.

▼약력 ▼

△1958년 생 △세종대 국문학과 졸(1996년) △성공회대 사회복지대학원 졸업(2002) △인천여성노동자회 사무국장, 부회장(1988∼1993년) △한국여성단체연합 사무총장(2000년∼) △여성부 여성발전기금 운용심의위원(2003) △공저 ‘열린 희망-한국여성단체연합 10년사’

남윤인순 한국여성단체연합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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