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여성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

  • 입력 2003년 3월 28일 18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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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사회의 발달과 함께 전통적인 남녀 성역할이 도전받고 있지만 두 성이 가진 차이는 오히려 더 세밀하게 분석되고 있다. 마네의 ‘풀밭 위의 식사’(왼쪽)와 이를 패러디한 이브 생 로랑 광고.사진제공 궁리
산업사회의 발달과 함께 전통적인 남녀 성역할이 도전받고 있지만 두 성이 가진 차이는 오히려 더 세밀하게 분석되고 있다. 마네의 ‘풀밭 위의 식사’(왼쪽)와 이를 패러디한 이브 생 로랑 광고.사진제공 궁리

◇여성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최재천 지음/232쪽 9500원 궁리

수컷보다 암컷이 더 예쁘게 치장하는 종(種).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의 특이한 속성 중 하나다.

어떤 동물이나, 수컷은 넘쳐나는 정자를 도처에 퍼뜨리는 전략으로 후세에 유전자를 전하려 한다. 이에 비해 암컷은 낳고 기를 수 있는 새끼의 수에 한계가 있는 만큼 배우자를 꼼꼼히 고를 수밖에 없다. 공작이나 꿩처럼 ‘화려한 수컷’이 동물계에 흔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인간의 전략은 정반대일까.

우리나라에 ‘사회생물학’을 앞장서 도입한 저자는 이 점에서 인간이 ‘북방코끼리바다표범’과 유사하다고 말한다. 수컷은 치장 대신 저들끼리 실력을 겨뤄 영토를 확보한다. 능력 있는 수컷의 널찍한 땅에서 자식을 기르며 살려면 암컷이 ‘잘 보여야’ 할 수밖에 없다.

이런 분석에 여성들은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다. 자연의 섭리를 들먹여 ‘여자는 남자에게 종속될지니라’라고 강요하는 듯이 들리기 때문이다. 실제로 초창기에 사회생물학은 ‘수컷의 바람기를 두둔하며 남성 우월주의를 뒷받침하는’ 학문으로 페미니스트들에게 돌을 맞기도 했다.

저자에 따르면, 그것은 오해다. 수컷이 매력을 과시하든 자원을 독점하든, 배우자를 선택할 최종 선택권은 엄연히 자식을 낳고 기르는 암컷에게 있다. 따라서 사회생물학의 본질은 페미니즘의 이상과 거리가 없다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왜 이제야 여성의 ‘선택권’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일까. 왜 저자는 남자가 화장을 하는 시대를 논하는 걸까.

남성 우월론자는 기계를 원망해야 할지도 모른다. 육체노동을 기계가 대치하면서 남녀에 따른 노동의 질적 차이는 사라져간다.

‘북방·코끼리·바다·표범’과 분명 다른 인간의 여성은 혼자 힘으로 영토를 확보한 뒤 당당히 아이를 키울 수 있게 됐다.

이제 이 종(種)의 암컷이 선호하는 파트너는 ‘수공작’이 아니라, 화려하지 않아도 동등하게 자녀를 키우는 ‘수갈매기’에 가깝다는 것.

저자에 따르면 이런 경향은 오늘날 실험을 통해 뒷받침된다. 영국의 진화심리학자들은 컴퓨터로 합성된 얼굴을 제시하는 실험을 통해 여성들이 점차 강인한 얼굴보다 온화한 얼굴을 선호한다고 분석한다.

영토 확보형이 아니라 육아 동참형 파트너를 요구하는 ‘진화적 압력’이 실제의 선호도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일까.

이제는 남성들의 마음이 편치 않을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여성학자 캐럴 타브리스의 말을 인용해 남녀 성역할에 대한 세 가지 오해가 있다고 말한다.

첫째는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다는 것, 둘째는 이와 반대로 여성이 우월하다는 것, 셋째는 남성과 여성은 다름이 없다는 것. 이런 오해로부터 자유로워진 논어의 화이부동(和而不同)이 저자가 제시하는 바람직한 남녀상으로 읽혀진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사회생물학이란? ▼

생명체의 특징을 발현시키는 유전자의 DNA가 진정한 생명의 주체이며, 개별 생명체는 DNA의 보존과 지속을 위한 ‘생존기계’로 간주하는 생물학의 분야 또는 경향. 종(種) 집단 내의 경쟁과 협동 등 사회적 행동도 유전자의 생존전략이라는 측면에서 관찰 분석한다.

여러 생물 종의 성(性)행동 X파일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는 조류의 새끼 중 30% 이상은 ‘아버지’와 피가 다르다.

○어떤 설치류의 수컷은 찐득한 정액을 분비해 암컷에 ‘정조대(貞操帶)’를 채운다.

○빈대는 암컷의 몸 아무 곳에나 불시에 대롱을 찔러 정자를 주입한다.

○부정(父情)의 표본인 가시고기는 수컷이 새끼를 키우지만 새끼들의 ‘엄마’는 제각각이다.

○갈매기 네 쌍 중 한 쌍이 1년 뒤 이혼한다.

○말 집단에서는 생식능력을 잃은 ‘할머니 말’이 수컷 우두머리를 ‘점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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