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를 가득 채우며 펼치는 역동적인 군무와 격렬한 전투 장면은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몸이 휘감기며 주고받는 사랑의 몸짓은 파리의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화려한 의상과 무대세트도 화제였다. 중세적 정서의 ‘과잉’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지만, 고전 발레의 위기가 거론되는 상황에서 동양인들이 서양의 중세적 정서를 정통 발레로 정교하게 표현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가 압도적이었다.
전 파리오페라발레단 주역무용수인 야니크 스테파니(48)는 “무용수들의 표현력이 뛰어났으며 다이내믹한 춤과 군무진의 앙상블도 좋았다”고 평했다. 그는 “로미오(엄재용 왕이 분)와 줄리엣(김세연 황혜민 분) 역을 맡은 무용수들의 작품 해석이 매우 뛰어났다”고 말했다.
파리인들은 특히 20년간 키로프 발레단을 이끌었던 올레그 비노그라도프가 2002년 새로 만든 이 작품의 안무에 주목했다. 저명한 무용평론가인 흐네 시흐뱅은 18일자 ‘르 피가로’지에 실린 리뷰에서 “비노그라도프씨의 신고전주의 안무가 기교보다는 서정성과 감수성을 정확하게 부각시켰다”고 격찬했다. 그는 또한 주역 무용수들의 깊이 있는 감정 표현, 시몬 파스투크의 위엄 있는 무대세트 디자인, 갈리나 솔로비예바의 금빛 물결치는 의상 등을 높이 평가했다.
‘로미오와 줄리엣’에 이어 18일 막을 올린 ‘심청’은 파리지앵들에게 생소한 주제임에도 약 1700명의 관객이 찾아 며칠 사이에 한국의 발레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음을 보여줬다.
공연장을 찾은 관객 나탈리 페레라(33)는 “생각보다 내용을 이해하기가 어렵지 않았다”며 “선원들의 역동적인 춤과 날개처럼 가벼운 심청의 춤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심청’은 1986년 초연 후 16년 동안 심청 역을 맡았던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 단장에 이어 새로운 심청의 탄생을 알리는 자리였다. 올해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하고 입단한 유난희씨(21)는 놀라울 정도로 가볍고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심청 역을 소화해 내며 관객들의 시선을 모았다. 문 단장은 “한국 무용수의 춤이 연기력에 있어 세계 정상급에 조금 못 미칠지 몰라도 무대와 객석의 벽을 넘어 관객들에게 감동을 전달하는 매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 이번 파리 공연에서도 확인된 듯하다”고 자평했다.
파리=김형찬기자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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