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포커스]SK후폭풍 채권시장 왜 요동치나

  • 입력 2003년 3월 13일 18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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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이 13일 2조원대의 환매조건부채권(RP)을 매입하는 등 돈을 풀면서 이틀째 급등하던 채권 금리가 숨고르기를 했다. 이에 따라 이번 ‘SK 쇼크’가 1999년 대우그룹 사태처럼 채권시장 붕괴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다소 낙관적인 분석도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문제는 투자자 심리”라며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과 펀드 환매 요구 진정이 앞으로 사태 전개의 중요한 요소라고 말한다.》

▽울고 싶은데 뺨 때린 격=전문가들은 SK글로벌 분식회계 사건이 이번 채권금리 폭등 사태를 촉발한 것은 사실이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이미 시장 안에 있었다고 분석했다.

우선 지난해 12월 이후 채권 값은 사상 최고 수준을 불안하게 유지하고 있었다. 미-이라크전쟁과 북한 핵문제 등 대외적 위험에 내수 위축과 경기 후퇴에 대한 우려감이 겹쳐 안전자산인 채권을 선호하게 된 것.

안동규 한국투신운용 채권전략실장은 “환율과 유가 상승으로 물가가 오를 조짐이 커졌고 정부가 당분간 정책금리를 낮추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면서 채권 값이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던 참이었다”고 말했다.

여기에 검찰이 SK글로벌 분식회계 사건을 발표한 것은 울고 싶은 시장의 뺨을 때린 격이 됐다. 안 실장은 이를 ‘마녀사냥’이라고 표현했다.

11일과 12일 투신사 펀드에서 6조8000억원이 빠져나간 것은 불안해진 심리가 금리를 올리고 금리 상승이 채권 투매를 유발한 ‘악순환’의 결과라는 것.

권경업 대한투신운용 채권운용본부장은 “다른 대기업의 분식회계 사실도 줄줄이 드러나 회사채의 ‘신용위험’이 커진다는 우려와 이로 인해 채권 값이 지금보다 떨어지기 전에 벌어둔 이익을 챙기자는 판단이 악순환을 일으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대우 사태와는 다르다=전문가들은 SK글로벌 분식회계 사태는 많은 면에서 1999년 대우사태와는 다르다고 지적했다. 우선 부실 채권의 규모가 다르다.

김후일 한화경제연구원 팀장은 “대우사태 당시 투신사 펀드들이 보유하고 있던 대우채권은 27조5000억원으로 투신권 전체 수탁액 247조6000억원의 11.1%를 차지했다”고 말했다.

이에 비해 SK글로벌이 발행한 채권과 기업어음 등은 1조7000억원 규모이고 1조원가량이 투신사 펀드에 편입돼 있는 것으로 김 팀장은 분석했다. 이는 펀드 전체 수탁액 148조원의 0.7%에 불과한 수준이다.

안 실장은 “최악의 경우 SK글로벌이 부도처리돼 채권 원리금의 30%만 돌려 받는 상황이 되더라도 투신권에 미치는 영향은 대우사태와 비교할 수 없이 작다”고 말했다.

또 대우사태는 그룹 전체의 문제였다는 점, 당시는 경기가 상승하면서 금리가 올라 채권 값이 낮은 수준이었다는 것도 지금과는 다르다.

대우그룹이 자금난 사실을 발표한 1999년 7월19일 이후 채권안정기금이 조성된 9월27일까지 채권형 펀드에서 38조7000억원, 머니마켓펀드(MMF)에서 10조원이 유출됐다.

신해용 금융감독원 자산운용감독국장은 “이번에는 대부분 MMF에서 돈이 빠졌고 예상과는 달리 일반 회사채 펀드에서는 자금 인출이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심리, 투자자 불안 해소해야=물론 아직 드러나지 않은 SK그룹의 부실이 있을 가능성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까지 드러난 상황을 종합하면 만기 3년짜리 국고채 금리가 연 5.40%에 이른 것은 비정상적으로 높은 수준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안 실장은 “제2, 제3의 SK글로벌이 나오지 않는 한 시장이 안정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신동준 한국투신증권 애널리스트는 “대우사태 당시 채권시장의 패닉 현상을 경험한 투자자들이 ‘일단 돈으로 바꿔놓고 보자’는 심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사태가 더 악화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권 본부장은 “불안심리가 금리를 올리는 악순환이 계속되면 시장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될 수 없어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신석호기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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