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543>達 人(달인)

  • 입력 2003년 3월 11일 18시 47분


코멘트
達 人(달인)

達-이를 달 禮-예도 예 節-마디 절

慣-버릇 관 終-마칠 종 裔-후손 예

‘達人’이라면 어떤 분야에 ‘通達(통달)한 사람’을 가리킨다. 실제로 그런 사람이 있었다. 한눈에 千里馬(천리마)를 알아봤던 伯樂(백락)이나 19년 동안 수천 마리의 소를 잡으면서 단 한 번도 칼을 갈지 않았다는 명 백정 포丁(포정) 정도를 그렇게 부를 수 있을까? 한 마디로 神技(신기)에 가까운 재능을 지닌 사람이라 하겠다.

孔子는 기원전 551년(周 靈王 21년·魯 襄公 22년)에 魯(노)나라의 邑(추읍·현 산동성 曲阜縣)에서 출생했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가난하여 귀족의 창고지기, 농장관리원, 회계, 목축관리 따위의 일을 하기도 했지만 워낙 성실한 데다 사교성도 많아 귀족과 접촉하면서 그들의 學識(학식)이라 할 수 있는 詩(시)·禮(예) 등을 익혀 나이 30세에 이미 禮로 유명하였다.

그런데 지금 ‘禮’라고 하면 흔히 禮儀凡節(예의범절)로 해석하여 인간관계에서 필요한 格式(격식)쯤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그 당시 禮는 인격수양의 기초이자 국가를 다스리는 근본 골격이었다. 곧 道德(도덕)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法律(법률), 制度(제도), 심지어는 風習(풍습), 慣例(관례)까지를 포함하는 광범위한 의미를 띠고 있었다. 공자는 바로 그 禮에 通達(통달)했던 사람이었다. 그랬던 만큼 그는 禮를 무척이나 중시했다. 論語(논어)나 孔子家語(공자가어)에 보면 그가 禮에 관해서 언급한 부분이 매우 많이 보인다.

한편 孔子의 禮學(예학)을 높이 평가한 이는 당시 魯나라의 勢道家(세도가)였던 孟僖子(맹희자)였다. 일찌기 昭公(소공)을 모시고 楚(초)나라에 갔을 때 禮를 잘 몰라 제대로 보필하지 못했던 것을 늘 부끄럽게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禮에 밝았던 孔子를 무척이나 존경했다. 결국 臨終(임종) 때 두 아들 孟懿子(맹의자)와 南宮敬叔(남궁경숙)에게 유언을 남겨 孔子를 師事(사사)하여 禮를 배우라고 하면서 말했다.

“禮란 사람의 기본이 되는 것이다. 내가 알기로 孔子는 聖人(성인)의 後裔(후예)인 동시에 禮에 대해 通達한 사람이다.”

그러자 또 다른 勢道家 臧孫紇(장손흘)이 거들었다.

“聖人 중에 밝은 德을 갖춘 자가 세상을 맡아 다스리지 않으면 반드시 그 후손 중에 達人이 나타날 것이라고 했는데 그가 바로 孔子다.”

그러니까 達人은 본디 禮에 通達했던 孔子를 두고 한 말이었음을 알 수 있다. 곧 최초의 達人은 孔子였던 셈이다.

鄭 錫 元 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