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세상/한 영화 두 소리]'영웅'을 보고…

  • 입력 2003년 2월 18일 17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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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기에 정답은 없다. 사람에 따라 같은 영화가 보석 혹은 쓰레기가 될 수도 있다. 부부라고 예외는 아니다. ‘영화 곱씹기’를 업으로 삼고 사는 남완석 교수(전주우석대 영화과)와 심영섭씨(영화평론가) 부부가 같은 영화를 보고 옥신각신하는 ‘한 영화 두 소리’를 연재한다.》

▽심영섭=‘영웅’을 보면 한때 ‘중국 빵’이라 불렸던 ‘공갈 빵’을 먹은 느낌이 들어요. 크고 매혹적이지만 텅 비어 있어 허탈해지니까. 그런데 왜 남자들이 ‘영웅’을 좋아하죠?

▽남완석=뭐 꼭 남자라서 좋아하나…. ‘영웅’을 ‘와호장룡’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는데, ‘와호장룡’은 사랑이 주를 이루고 거기에 액션과 동양적 허무주의가 결합됐지만 ‘영웅’은 주제 자체가 크잖아요. 그런데 대개 무협영화들의 주제는 영웅적 대의명분이거든. ‘무협’측면에서 보면 ‘와호장룡’이 장르의 궤도를 이탈한 예외이고 ‘영웅’이 정통인 거죠.

▽심=하지만 무협영화의 본질은 허무주의 아닌가? 세상을 칼로 얻지만, 칼로 벨 수 없는 게 있다는 득도의 경지 말이지. ‘영웅’에는 그런 여백이 없어요. 주변의 모든 것을 포섭하려는 결기만 느껴진다니까. 예컨대 ‘와호장룡’에서는 무협 자체가 인격을 내포하잖아요. 리무바이가 대나무 위에 유연하게 서서 싸우는 장면에선 그의 담대함,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인간성이 드러나 보이는 거고. 그러나 ‘영웅’은 개개인에 대한 배려가 없어. 정열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으면 화면 전체를 빨갛게 물들이고 인물들을 다 포섭해버리잖아. 감독의 의도가 화면을 물들여 버려.

▽남=그건 ‘영웅’의 진정한 화자(話者)가 등장인물들이 아니라 장이머우 감독이기 때문이야. 또 ‘와호장룡’은 심리묘사에 치중했지만 ‘영웅’은 애초부터 컨셉트 자체가 액션 위주로 설정됐다구. 심리묘사에 천착할 여지가 없는 거지. 그게 ‘와호장룡’에 비해 단점으로 보일지 몰라도 무협 영화로는 큰 흠집이 아니지. 오히려 무협영화의 장르 규칙에 충실한 거지.

▽심=영화를 그렇게 조각 내서 보다니, 당신다운 ‘분석’이야. 그런데 내 ‘직관’으로는, ‘영웅’은 관객을 압도하려 들지만 ‘와호장룡’처럼 관객을 이완시켰다가 긴장시켰다가 하는 리듬감각이 없어. 잘 만든 상업영화라면 압도적 스펙터클이나 반전의 얕은 수가 아니라 풍성한 분위기, 리듬감각을 보여줬어야 하는 거 아냐? 게다가 감독이 장이머우라면 말이지. 장이머우는 재주꾼이지만 거장이 되기에는 2% 부족한 것 아닐까?

▽남=감독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커서 실망도 큰 거 아냐? 할리우드의 상업영화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보면 ‘영웅’의 시각적 충격은 ‘반지의 제왕’보다 더 수가 높다고 생각해. 정말 잊혀지지 않을 장면들이 많잖아. 비 오는 사원에서의 결투 장면은 정말 잘 찍었어.

▽심=뭐, 그냥 ‘매트릭스’를 연상케 하던데….

▽남=아니라니까. 물이 떨어지는 분위기와 안무, 음악과 액션의 교차가 굉장히 절묘하고 힘이 압축돼 있잖아. 사실 한 영화를 보면서 다른 영화를 떠올린다는 것은 보는 영화의 독창성이 부족하다는 말과 마찬가지지. ‘영웅’을 보면 ‘매트릭스’ ‘반지의 제왕’ ‘와호장룡’ 같은 영화들이 생각나는 건 사실이야. 색채는 구로자와 아키라의 ‘란’을 연상시키고. 짜깁기의 냄새가 난다구. 그러나 그렇다고 완성도가 없는 영화인가? 아니야. 일정 수준의 완성도가 있고, 관객에 대한 서비스를 하는 영화라구.

▽심=이야기도 뭐, ‘라쇼몽’같고….

▽남=그건 장이머우가 재주를 부린 건데, 좀 실패한 컨셉트 같아. ‘라쇼몽’에서는 이야기가 변증법적 정반합을 이루는데 ‘영웅’은 그냥 앞의 이야기가 거짓말이라고 뒤집는 거니까.

▽심=왜 그런 줄 알아? ‘라쇼몽’은 화자의 시선이 바뀌는 것과 함께 영화의 시선이 바뀌지만, ‘영웅’에서는 색깔과 명제가 바뀌어도 영화의 시선은 그대로라서 그래.

▽남=그건 ‘영웅’이 장이머우 감독이라는, 전지적 시점의 화자를 갖고 있어서 그래.

▽심=그래서 웃기는 거야. 전지적 화자를 끌어들이면서 어떻게 이야기 구조를 바꿀 생각을 하냐.

▽남=그래서 긴장감이 떨어지는 거지. 하지만 이야기가 바뀔 때마다 색채를 바꾸는 과다한 형식미가 큰 문제라고 볼 수는 없어. 장이머우가 왜 초기작인 ‘붉은 수수밭’ ‘홍등’에서처럼 현란한 색채를 다시 도입했을까 생각해봤는데, ‘영웅’의 이야기 자체가 중국의 현실을 연상시킬 수도 있다는 계산을 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현실과의 연관을 배제하기 위해 과도한 형식적 덧칠을 한 게 아닐까 싶어.

▽심=그런데도 그 영화는 현실에 대해 발언하고 있잖아.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는 전체주의적 이데올로기가 보여. 오히려 현실을 등에 업고 현실을 찬동하는 인상을 준다니까. 마지막에 진시황이 이렇게 저렇게 위대한 황제였다는 자막은 정말 코미디 아냐?

▽남=그건 마케팅 전략일 뿐이야. 진시황만큼 서방세계에 알려진 왕이 어디 있어? 당태종이 주인공이라고 생각해봐. 세계적 보편성이 없어지는 거지. 할리우드적인 상업영화를 만들면서 세계시장에서 가장 잘 먹힐 스토리를 구한 것일 뿐이야.

▽심=그렇다면 장이머우의 꿈은 ‘중국의 존 포드’가 되는 거네. 중국 무협영화는 미국의 서부영화와 마찬가지야. 일종의 건국 신화인 거지. 그런데 왜 이제 와서 중국을 신화화하는 작업이 필요했던 걸까. 나는 중국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봐. 자본주의가 밀려들면서 정체성이 흔들리고, 그래서 중국 정부가 ‘영웅’을 밀어준 거지.

▽남=정치적 고려가 개입됐다는 말인데, 그렇게 외적 상황으로 영화를 규정하는 것은 부당한 평가절하 아냐? 영화라는 게 관객을 만날 때의 상황에 따라 의미도 달라지긴 하지. ‘영웅’이 개봉된 시점은 북한 핵 문제로 우리가 미국의 속국이냐, 뭐 그렇게 전체주의적인 것에 민감해진 상황이잖아. 그래서 ‘영웅’의 대국주의적 이데올로기가 거슬리는 모양인데, 무협영화들이 원래 대의명분을 앞세우잖아. ‘영웅’도 그냥 무협영화 장르의 관점에서 즐기면 되는 거야.

▽심=왜 어떤 감독들은 늙어가면서 영화적 형식에 집착하는 걸까?

▽남=파스빈더도 그랬지. 구로자와 아키라도 그렇고, 테오 앙겔로풀로스도 그렇고….

▽심=마치 더 할 이야기가 없다는 듯이, ‘누가 이 영화를 보는가’보다 ‘내가 만든 거다’가 앞서는 경향이 있는데 장이머우가 그 전철을 밟는 것 같아. 나는 그게 안타까워. 장이머우에게 삶이 준 선물이 뭔지를 영화를 통해 지금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이.

▽남=그런데, 문학에서는 이미 용도폐기된 ‘작가주의’의 개념을 왜 영화에 대해 고수하는 거야? 감독이 꼭 일관성이 있어야 하나? 나 같아도 이런 식으로도 해보고 저런 식으로도 해보고 그럴 것 같아. 장이머우가 상업 영화를 처음 만든 것도 아니잖아. 그런데도 ‘영웅’을 놓고서 장이머우가 이제 한계에 도달했다고 평가하는 것은 고루한 ‘작가주의’적 관점이야.

정리=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토론 관전기▼

영화학자, 평론가 부부의 ‘한 영화 두 소리’는 ‘핫 앤드 쿨 (Hot & Cool)’의 대담이었다. 아내 심영섭씨가 열띤 어조로 잽을 날리면, 남편 남완석씨는 한 발 물러서서 차분한 톤으로 아내의 주장을 반박했다. 하지만 ‘핫’의 기세에 내내 ‘쿨’하기는 어려웠던지, 상호 존칭으로 시작된 대담은 시간이 흘러가면서 평상시의 반말 톤으로 바뀌어 있었다.

수월하게 이야기하는 듯 보여도 대담의 ‘비기’를 갈고 닦기 위해 두 사람은 ‘영웅’뿐 아니라 ‘와호장룡’도 두 번씩 보는 열성을 보였다. 남편 남완석씨는 대담 전날 밤 12시, 자지 않고 칭얼거리는 9개월난 딸을 분홍 포대기로 등에 업고 ‘와호장룡’을 다시 봤다는 후문이다.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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