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532>岐 路 亡 羊(기로망양)

  • 입력 2003년 2월 13일 18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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岐-갈라질 기 路-길 로 端-끝 단

總-모두 총 盲-장님 맹 效-효험 효

참 좋은 세상이다. 지금은 衛星(위성)을 통한 위치 파악 시스템이 실용화되어 전국 어디든 쉽게 찾아갈 수 있지만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다. 오로지 里程標(이정표)에만 의지했는데 그나마 里程標가 있는 길은 그리 많지 않았고 대부분 물어서 찾아가야 했다. 혹 아무런 標識(표지)도 없는 데다 인적마저 뜸한 시골의 岐路(갈림길)에라도 들어서게 되면 누구나 망설이게 되며 심한 경우 낭패를 보는 수도 있었다.

楊子(양자·이름 朱)라면 戰國時代(전국시대)의 대학자다. 極端的(극단적)인 利己主義(이기주의), 個人主義(개인주의)를 주장함으로써 墨子(묵자·이름 翟)의 兼愛說(겸애설)에 반대하였다. ‘내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세상에 도움이 된다면 뽑지 않겠다’고 한 말은 유명하다.

하루는 그의 이웃집 노인이 곧 새끼를 낳을 예정이던 어미양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노인은 마치 대단한 보물이라도 잃은 양 크게 상심한 나머지 친척과 친구를 總動員(총동원)하여 찾아나섰다. 그러자 보다 못한 楊子가 말했다.

“아니, 고작 양 한 마리를 잃고 뭘 그렇게 야단법석이오?”

노인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갈림길이 워낙 많아서…”

하루종일 찾았지만 허탕치고 다들 빈손으로 돌아왔다. 다시 楊子가 말했다.

“그 많은 사람을 動員했으면서도 글쎄 양 한 마리를 못 찾았단 말이오?”

노인은 이번에도 똑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갈림길이 워낙 많아서…”

楊子는 하루 종일 기분이 씁쓸했다. 그러자 弟子(제자)가 말했다.

“옆집 노인께서 양 한 마리를 잃은 것과 선생님이 무슨 관계가 있다고 그렇게 상심하고 계시는 겁니까?”

“네 말이 맞다. 물론 나와는 상관없지. 하지만 내가 상심한 것은 그 노인이 양을 잃어서가 아니라 너무도 평범한 진리를 모르고 있기 때문이지. 이길 저길 다 돌아 다녔으니 말이야. 學問(학문)의 도리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아무런 方向(방향)도 設定(설정)하지 않고 盲目的(맹목적)으로 하다 보면 양 잃은 노인의 꼴과 다름없게 된단 말이야.”

岐路亡羊(기로망양)의 고사다. 사업을 하든 學問을 하든 먼저 目標(목표)와 方向을 명확하게 設定해야 함을 일깨워주고 있다. 그렇지 않고 뛰어들었다가는 갈림길에 서서 우왕좌왕하듯 事倍功半(사배공반·노력에 비해 소득이 적음)의 어리석음을 범하기 십상이다. 效率(효율)을 중시하는 지금 한 번쯤 새겨봄직한 교훈이라 하겠다.

鄭 錫 元 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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