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524>應 接 不 暇(응접불가)

  • 입력 2003년 1월 23일 17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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應 接 不 暇(응접불가)

應-응할 응 暇-겨를 가 伍-대오 오

慶-경사 경 藝-예도 예 聖-성인 성

應接은 應酬(응수)와 接待(접대)의 복합어이며 暇는 餘暇(여가). 休暇(휴가). 閑暇(한가)에서 보듯 ‘틈’, ‘겨를’을 뜻한다. 따라서 不暇라면 ‘틈이 없다’, ‘∼할 여가가 없다’는 뜻이다.

요즘 그런 경우가 많다. 워낙 바쁘게 돌아가는 시대라 자칫 한 눈 팔고 있다가는 落伍(낙오)하기 십상이다. 직분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이것저것 기웃거릴 시간이 없다. 자연히 ‘사람 구실’을 못할 때도 있다. 慶弔事(경조사) 챙기는 것을 잊는다든지 친구나 친척을 찾을 틈도 없는 경우가 많다. 應接不暇는 바로 이런 경우에 할 수 있는 말이다. 워낙 바빠 사람과 접촉할 틈이 없다는 뜻이다. 應接無暇(응접무가)라고도 한다.

그러나 또 다른 應接不暇도 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광경을 보았다거나 특이한 물건을 보았을 때 무엇부터 봐야 할지 몰라 당황해하는 경우다. 혹 가을날 설악산을 찾았다가 그만 丹楓(단풍)의 황홀함에 취해 막상 어느 풍경부터 감상해야 할지 몰랐던 경험은 없는가. 사실 본디 應接不暇는 그런 경우에서 나온 말이었다.

山陰道(산음도)라면 현재 浙江省(절강성) 紹興(소흥)시의 서남 교외 일대로 예로부터 경치가 수려하기로 이름이 자자했다. 중국 최초로 書藝(서예)를 集大成(집대성)하였다 하여 書聖(서성·서예의 성인)으로 추앙받는 王羲之(왕희지·321-379)는 바로 이곳 출신이다. 그의 아들 王獻之(왕헌지·344-390) 역시 아버지의 書藝를 익혀 一家(일가)를 이루었으며 벼슬이 中書令(중서령·국회의장)에까지 올랐다. 그는 山陰道의 뛰어난 風光(풍광)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山陰道는 기가 막히게 좋은 곳이다. 우뚝 솟은 산봉우리며 깊은 계곡이 마치 병풍처럼 하나씩 눈앞에 전개된다. 그것들이 경쟁하듯 서로 비치고 반짝이면서 나타나면 일일이 應接(상대함)할 겨를이 없을 정도다. 게다가 단풍이 물들고 하늘이 높을 대로 높아진 가을이나 쓸쓸한 겨울철에 이 곳을 지나기라도 하면 아예 다른 생각은 할 겨를조차 없다.”

王獻之가 그토록 정신 없을 정도로 應接不暇했던 까닭은 山陰道의 아름다운 경치 때문이다. 그런 應接不暇라면 얼마든지 반길 만하지 않은가.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應接不暇할 만한 상황도 그리 많지 않거니와 오직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시대에 落伍하지 않기 위해 應接不暇할 따름이다. 이래저래 현대인은 고달프기만 하다.

鄭 錫 元 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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