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인생의 음악]불굴의 의지 가르쳐준 베토벤 교향곡 제5번

  • 입력 2002년 8월 6일 18시 43분


《이번주부터 각계 명사들이 말하는 '내 인생의 음악' 칼럼을 격주로 싣습니다. 평생 단 한번의 감동으로 다가온 명곡의 체험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는 코너입니다.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담긴 음악, 삶을 뒤흔들어 놓은 명곡 이야기를 통해 클래식 음악의 참 맛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1960년대에 중 고교와 대학을 다닌 나는 완벽한 60년대 세대이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지금도 60년대 팝송을 좋아한다 60년대 진보주의 정신을 반영한 당시의 팝송 중에는 정치적 저항가나 반전가(反戰歌) 또는 반(反)문화나 사회변혁에 대한 노래들이 많았다. 당시 나는 조운 바에즈의 ‘도나 도나’나 ‘100마일’ 같은 반체제 반전 노래들의 영어가사를 다 외우고 있었으며, 웬만한 팝송 역시 전주곡이 나오는 순간, 제목과 가수를 알아 맞출 수 있었다. 60년대에 우리는 조운 바에즈와 엘비스 프레슬리와 비틀즈, 그리고 ‘예스터데이’와 ‘트라이 투 리멤버’ 또는 ‘블로우잉 인 더 윈드’와 더불어 성장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음악선생님께서 수업시간에 대형 스테레오를 갖고 들어오셨다. 이윽고 선생님은 LP판 하나를 틀어주셨는데, 그게 바로 베토벤 교향곡 제5번 C단조 OP. 67이었다. 음악이 시작되는 순간 교실에 웅장하게 울려 퍼지는 도입부의 ‘다다다 단’ 소리, 그리고 때로는 처절하게 또 때로는 박진감 있게 이어지는 베토벤 특유의 선율은 감수성 예민하던 우리를 삽시간에 매혹시켰다. 베토벤 자신이 “운명은 이처럼 문을 두드린다”라고 말했다고 알려진 초반부의 노크 소리는 그 날 마치 운명 처럼 내 마음의 문을 두드렸고, 이후 나는 클래식 음악의 세계에 눈뜨기 시작했다.

‘운명’이라 불리는 그 다단조 교향곡이 특히 감동적이었던 이유는 우선 그 속에 깃들어 있는 작곡가의 고통과 불안과 시련,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그의 강한 정신력과 의지력 때문이었다. 음악가로서는 치명적인 귀머거리 증세, 애인 브룬스비크와의 실연, 그리고 나폴레옹의 침략 같은 시련을 겪으면서도 잔인한 자신의 운명을 오히려 희망과 승리로 승화시키는데 성공한 베토벤의 휴머니즘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베토벤의 음악이 그 후에도 내내 좋았던 또 하나의 이유는 과감히 규칙의 틀을 깨는 그의 파격 때문이었다. 베토벤은 긴 박자의 코다와 두 개의 관현악 푸가를 이용해 교향곡 작곡에 대한 관습적 규칙을 깼고, 그 결과는 강력하고도 완벽한 음악이었다.

‘운명’ 역시 제1악장 알레그로 콘 브리오로부터 시작해 제4악장 알레그로 비바체에 이르기까지 그 어느 한 부분도 놓치거나 버릴 수가 없을 만큼 완벽하게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베토벤을 좋아한다. ‘운명’이 파리에서 연주되었을 때, 한 어린아이의 입에서 나온 “무서워!“는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베토벤의 음악이 얼마나 완벽하게 감정이입에 성공하고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베토벤의 ‘운명’은 내게 불굴의 의지와 파격의 힘을 가르쳐준 잊을 수 없는 음악이다.

김성곤 서울대교수 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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