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은의 이야기가 있는 요리]마르세유 해물요리 '부야베스'

  • 입력 2002년 2월 28일 14시 22분


프랑스 남단에 위치한 항구도시, 마르세유. 지중해 지역에서 가장 큰 항구 중 하나로 쨍쨍한 햇빛과 파란 바다가 이 고장 사람들을 넉넉히, 그리고 느리게 만든다. 여름이면 파리, 런던을 비롯한 이웃 도시의 관광객들이 사무실에서 창백해진 얼굴을 그을리려 모여들지만 사실 한적한 바닷내를 만끽하기에는 요즘 같은 봄 공기가 최고로 평화롭다.

세잔의 풍경화에 자주 등장하는 산과 바다는 이 고장의 풍경들이 주를 이루는데, 햇살을 맞받아 반짝이는 바다는 인상파 화가 세잔을 붙들어 두기에 충분하도록 인상깊고, 적절한 수온 덕분에 해산자원 또한 풍부하다. 이 지방의 토종 요리들은 비교적 기름진 흰살생선들로 육수를 우려 바탕이 되는 맛을 깔고 거기에 갖은 해물들을 한겹 포개어 단맛을 더한다. 이 요리법에 가장 충실한 마르세유의 대표적 요리는 바로 ‘부야베스’. 우리식 해물탕인데 갖은 해물들을 뽀르륵 끓여내 상 위에 올리면 별다른 반찬 없이도 심심하던 식탁이 바다가 된다.

부산 자갈치시장의 재첩국이나 제주도 오분작 뚝배기는 서울에서 만들 수 없는 맛이다. 당일 새벽에 막 그물에서 떼낸 재첩이나 오분작의 살아 있는 단맛과 아직 숨쉬는 속살의 탄력이 부산에만, 그리고 제주도에만 존재하니까…. 제아무리 ‘산지직송’ 이란 꼬리표를 달아도 ‘그 맛’의 ‘재현’이란 불가능하다.

마찬가지로 머리 뒤로 프랑스 아저씨들의 대화가 툭툭 오가고 눈앞에 세잔의 바다를 두고 맛봤던 그 부야베스의 맛은 마르세유를 떠남과 동시에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기억’이 되었다. 그러나 오늘 한번 서울의 맛을 풀어넣은 해물탕에 도전해 본다.

올 여름 어느 오후 마르세유 해변가에 앉아서 쉬다가 서울에서 맛본 퓨전 해물탕이 문득 그리워질지도 모를 일이다.

프랑스 요리는 비싸고 만드는 과정도 까다로울 것이라는 선입견은 이해하는 바이고 수긍하는 바다. 하지만 ‘부야베스’ 같은 요리는 정말 ‘냉장고를 뒤져서도’ 만들 수 있는 음식이다. 물론 정식 레서피대로 모든 어류를 꼭같이 구할 수도 있겠지만 그날 시장 아저씨가 자신있게 권하는 놈으로 골라오면 대체로 무난하다.

주재료로 삼은 생선을 두마리 정도 준비해 내장 정리를 한다. 그 뒤에 오징어나 주꾸미, 또 새우 등 구할 수 있는 해산물을 손질해 넣는데 다다익선이라고, 더 다양한 종류의 해물이 섞일수록 완성 후 바다향이 짙어진다.

마르세유를 비롯한 남프랑스 지방 요리들의 특징은 내륙과 비교해 버터를 덜 쓴다는 것이다. 이웃한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요리의 영향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신선한 해산물의 향이 동물성 지방인 버터보다는 식물성인 올리브 기름에 더 살아나기 때문이다.

올리브유를 전골용 냄비에 넉넉히 두르고 뜨거워질 때쯤 마늘을 다져 넣는다. 시큼한 올리브 기름이 데워지면서 부드러워지고 마늘 역시 거기에 볶아지면서 단맛을 띤다. 이쯤에서 붉은 고춧가루를 척 털어넣고 냄비 바닥의 기름이 발그레해지도록 달달 볶는다. 부드럽던 열기에 톡 쏘는 고춧내가 돌면 다듬은 야채와 생선을 넣고 슬쩍 익히다가 생선살이 흰빛을 띠고 새우가 분홍이 되는 순간 육수와 물을 붓고 한소끔 끓이면 완성이다.

토종 부야베스는 사프란이란 향신료가 필수 양념이다. 사프란이란 우리의 실고추처럼 생긴 꽃가루 향신료로 구하기가 쉽지 않고 가격도 만만치 않아서 초반에 볶은 고춧가루로 대신하고 다만 상에 내기 직전에 신선한 바질잎을 잘라 넣는다. 만약 사프란을 구할 수 있다면 고춧가루를 빼고, 끓이는 단계에서 사프란을 첨가하면 된다.

발그레한 육수에 담백한 바닷내가 모락모락한 이 해물탕의 짝이 될 오늘의 와인을 보자. 와인과 음식의 궁합은 동향 출신일수록 잘 맞을 확률이 높아지지만 마르세유를 품은 남프랑스 해안은 그리 뛰어난 와인산지가 못 된다. 가장 널리 마시는 로제와인이 그나마 유명한데 산딸기와 꽃향이 달달하여 해물들과 잘 어울리지 않으므로 차라리 이웃한 이탈리아의 와인인 ‘피노 그리지오(Pinot Grigio)’를 권한다. 미국의 샤르도네나 프랑스의 샤블리처럼 가장 구하기 쉽고 대중적인 화이트 와인으로 개성이 드세지 않아 마시기 편하고 그 가운데 날카로운 맛의 차가운 과일향(레몬이나 배)이 지나가면서 해물과 어울린다.

프랑스 혁명 당시 파리의 바스티유를 점령하여 민주주의를 이룬 평민부대는 마르세유로부터 올라왔다고 한다. 그들이 파리까지 끝없는 행군을 하며 마르세유 마을의 노래를 군가처럼 불렀다 하는데 그 노래가 오늘날 프랑스의 국가가 되었다. 굶주림에서 시작된 혁명이었지만 그 훨씬 이전의 세월 동안 이들이 먹어온 해물탕에서 혁명의 원기가 나오지 않았나 상상해 본다.

◇ 재료

생선 2마리(생태, 농어, 우럭 등등), 기타 해물류(조개, 새우 등등) 1㎏, 양파 1개, 피망 1개, 마늘 2톨, 대파 50g, 고춧가루 1큰술, 올리브유 4큰술, 월계수잎 1∼2장, 토마토 200g, 생선 육수 1컵, 물 약간, 화이트와인 또는 럼주 약간, 바질잎 4장.

◇ 만드는 법

(1). 생선을 잘 다듬어 물기를 닦아둔다.

(2). 기타 해물류도 각각 손질한다.

(3). 마늘은 평으로 얇게 썰고 양파와 피망은 길게 썬다.

(4). 토마토는 깍두기 크기로 썰고 대파는 흰 부분으로 5㎝씩 썰어서 반으로 가른다.

(5). 팬에 올리브 기름을 두르고 마늘을 볶다가 고춧가루를 넣고 기름이 붉은 기가 돌 때까지 볶는다.

(6). 5에 양파, 피망을 볶다가 1과 2의 생선과 기타 해물을 넣고 익힌다.

(7). 6에 토마토와 대파를 넣고 육수로 간하고 물로 농도를 맞추어 월계수잎을 넣은 뒤 한소끔 끓인다.

(8). 해물이 다 익으면 월계수 잎은 건져내고 바질잎을 넣는다.

(9). 소금과 통후추로 마지막으로 간을 하고 화이트 와인이나 럼주를 몇방울 흘려 향미를 돋운다.

(10. 뜨거울 때 바게트나 하드롤 등과 서빙한다.

◆ 마르세유와 부야베스

론강을 엮어 들어가며 시작되는 프로방스 지역은 지중해 바다로 이어지는 프랑스 남부지방이다. 풍부한 햇빛과 알프스 산맥이 지나가는 비옥한 토양을 비롯하여 바다까지 접하고 있는 살기 좋은 곳으로 프랑스인들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많은 관광객이 몰려드는 휴양지이기도 하다.

매년 여름 대규모 연극제가 열리는 아비뇽시와 더불어 프로방스 지역의 큰 도시 중 하나인 마르세유는 지중해와 맞닿아 있는 커다란 항구도시. 프로방스의 다른 지역들이 고대로부터 영향을 받은 로마 문화의 유적과 풍습을 간직한 것에 비해 마르세유는 떠들썩하고 들뜬, 전형적인 항구도시의 분위기가 강하다.

먹을거리로는 항구 도시답게 해산물이 으뜸으로 대접받는데, 특히‘부야베스’라 불리는 해물탕은 전주의 ‘비빔밥’과 같은 이 지역의 대표 메뉴다. ‘부야베스’는 어시장에서 팔고 남은 생선들을 모아 끓여먹던 일종의 수프로, 긴 세월을 거치며 이 지방의 명물이 됐다. 서너가지의 생선을 물과 올리브유로 재빨리 끓여 사프란향을 첨가한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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