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승창의 NGO이야기]오래된 비판 …시민없는 시민운동

입력 2000-10-23 13:54수정 2009-09-21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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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운동이 지난 10년간 우리 사회의 변화에 대해 끼친 영향은 새삼 말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월간 <참여사회>와 한길리서치가 4·13총선 뒤 정치인·공무원·언론인·직장인 각 60명씩 모두 240명을 대상으로 벌인 `시민운동의 영향력 조사'에서 `한국사회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집단'을 물은 결과, 응답자의 9.3%가 시민단체를 꼽았다.

언론(30.4%), 행정부(22.5%), 국회(19.6%), 재계(11.7%) 다음으로, 사법부(5.0%)보다도 더 영향력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한겨레신문 5.14자) 낙선운동이 성공적으로 끝난 뒤라 조금 과대하게 평가된 측면이 있겠지만, 시민운동의 영향력이 만만치 않음을 볼 수 있습니다.

6년전에는 경실련이 한약분쟁에서 중재하는 역할을 하고 난 뒤 시사저널의 조사에서도 비슷한 영향력 순위를 기록한 적이 있습니다. 다른 영향력 순위조사에서도 지난 몇 년간 시민운동은 비슷한 순위를 기록합니다.

이처럼 시민운동의 시대라고 할만큼 강한 영향력을 가진 시민운동에 대해 따라 다니는 오래된 비판이 '시민없는 시민운동', '전문가중심의 언론플레이 운동', '백화점식 운동' 등입니다.

조직화된 시민보다 불안정한 여론이 더 중요하다 ?

'시민없는 시민운동'이라는 비판이 시민운동에 대한 비판으로 보편화되기 시작한 것은 97년부터입니다.

당시 경실련의 '김현철의 국정개입사건'에 관한 비디오테이프 논란 이후 한겨레신문이 시민운동에 대한 총괄적인 비판을 전개하면서 붙인 제목이었습니다. 한겨레신문이 최근에는 한국적 특수성을 강조하는 견해들을 비판에 대한 답변으로 반영하고는 있지만 그 특수성이야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바 없으니 적절한 변화는 아닌 것 같습니다.(당시에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작은 단체를 강조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특수성이라는 것이 한겨레가 인용한 조희연교수의 말을 옮기면 《'경실련이나 참여연대 같은 준정당적 성격을 지닌 세계 시민운동사에 유례가 없는 `종합형 시민운동'의 출현 배경을, 한국정치의 후진성에 따른 `대의의 대행과 권력감시형 시민운동의 부상'》에서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몇 년전과 지금이 크게 다른 것은 아니니까요.

어쨌든, 환경운동연합의 회원이 6만여명에 이르고 월 소액회비의 액수가 거의 7천여만원에 이르고 참여연대는 탄탄한 회원모임이 13개가 있고 8,000여명의 회원이 5천만원이 넘는 회비를 모아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시민없는 시민운동'이라고 할까요? 최근의 총선대 활동은 100일동안 홈페이지를 찾은 연인원이 90만에 이르고 후원금이 5억이 넘게 모아졌습니다. 그런데도 문화일보가 연재한 총선연대 뒤집어보기에서는 여전히 언론플레이 중심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었습니다. 아마도 이는 김동춘 교수의 지적대로,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운동에서 부분적으로 드러났듯이 한국 시민운동의 지지기반은 조직화된 시민이라기보다는 `쉽사리 변하는 불안정한 여론'쪽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여기 한가지 해법으로 제기된 내용을 소개해 봅니다. 역시 한겨레신문에 인용된 것입니다.

- 시민참여형만이 능사는 아니다.

시민운동가들과 전문가들의 대다수는 풀뿌리 지역자치조직 활성화로의 방향전환을 `시민없는 시민운동'의 극복대안으로 제시한다. 중앙집중형 연대운동보다 지역·분야별로 분화된 풀뿌리 자치운동을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 시민단체의 핵심관계자는 시민운동의 향후 진로에 대해 이와 다른 논쟁적인 접근법을 제안했다. “지금 한국사회는 시민운동의 대변적 기능과 시민(지역)자치적 기능 가운데 전자가 강한 편이다. 때문에 풀뿌리 지역자치운동의 활성화는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의 한국시민운동을 서구 시민운동의 시각으로 시민없는 시민운동이라고 비판하며 풀뿌리 지역자치운동을 일방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곤란하다. 강력한 대변적 기능은 한국시민운동의 강점으로 꼽히는 역동성의 다른 표현이다. 모두가 두가지 기능을 다 갖추려 하기보다 구실 분담이 필요하다. 전체 사회운동적 관점에서 보자면, 시민자치적 기능은 지역수준에서 담당하고 중앙조직은 대변적 기능을 중심으로 지역조직을 지원하는 센터 구실을 맡는 게 타당하다.”(한겨레신문 2000.5.14자)

고개를 끄덕이게 할만한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모든 단체의 활동방식이 다 시민참여형이어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어떤 단체는 소송이라는 방식으로 어떤 단체는 연구활동이라는 방식으로, 어떤 단체는 미디어라는 방식으로 활동할 수 있고 그런 다양한 활동방식이 존재하는 것이 그리 나쁘지 않습니다.

- COMMON CAUSE

그러나 우리만큼의 사회적 역동성은 없다고 하더라도 본받을만한 외국의 단체들이 있습니다.

예컨대 COMMON CAUSE라는 미국의 의회감시단체는 미 전역에 회원을 두고 이 회원들이 자기가 사는 주의 의원들을 대상으로 한 압력을 조직합니다. 워싱턴의 본부가 과제를 정하면 이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본부는 워싱턴에서 로비활동에 들어가지만 미 전역의 회원들은 자기 주의 의원들을 대상으로 압력을 가하는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전화, 팩스, 엽서 등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뿐 아니라 의원사무실 방문, 의원 행사장에 찾아가기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이루어집니다. 물론 저도 보고 온 것이 아니어서 얼만큼 역동적으로 이런 행동들이 조직되는 지에 대한 감은 없습니다. 그러나 본부에서 자원봉사자들이 회원들에게 전화작업을 통해 과제를 설명하고 회원들은 직접 압력을 가하고 한다고 하는 것을 보면 실제 액션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시민들의 참여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견주어 보면 우리도 김동춘교수가 지적했듯이 조직화된 시민의 행동이 시민있는 시민운동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조직화된 시민'의 행동이란 전국적 단위로만 이루어져야 한다는 법칙은 없습니다. 지역적 단위에서 동네단위에서도 얼마든지 이루어질 수 있고 이런 다양한 층위의 행동이 조직될 때 실제 사회가 변하고 제도가 변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 양적 기준을 탈피해야

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는 아직 본격적인 시민참여가 이루어지고 있는 시민운동의 모습은 아니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변화의 조짐은 보이고 있고 가능성도 보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터넷상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안티사이트들의 움직임은 네티즌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지는 소비자운동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생태보전시민모임의 자원봉사자들의 길동 생태공원 관리, 환경정의시민연대의 월간지를 만드는 아줌마부대들, 참여연대나 환경련, 녹색연합, 여성단체의 회원조직들은 그런 가능성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풀뿌리 조직의 강화라는 방향이 중앙정부를 상대로 한 조직들과 달리 많은 부분 지역조직의 몫이지만 그것이 중앙정부를 상대로 한 조직들의 시민참여형으로의 발전 필요를 면제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시민운동이 시민단체만의 운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조직화된 시민은 수의 많고 적음을 우선시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시민운동이 우리 사회의 바람직한 변화-지향과 목표가 시민단체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습니다.-를 지향하는 것이라면 결국은 제도의 변화뿐 아니라 '사람'의 변화도 추구하는 것일 테니까요. 결국은 '어떤'시민들이 참여하고 '어떤'시민들을 조직할 것인가가 중요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무작정 회원 10만명을 모집한다고 해서 곧바로 조직화된 시민들이 움직이는 단체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거지요.

- 시민운동에도 무임승차자가 있다.

우리 시민들의 무임승차자의식도 함께 짚어 보아야 할 대목입니다. 어느 단체에서 실제로 있었고 또 뉴스로 알려지기도 한 에피소드가 하나 있습니다. 어느 해인가 장마로 길가에 세워놓았던 많은 승용차들이 피해를 입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운행중인 차량이 아니었다는 이유로 보험사들이 보험료 지불을 거부하고 있어서 소비자들의 피해가 적지 않았습니다.

이 단체는 손해사정인들의 자원봉사로 소비자들의 피해구제에 나섰고 많은 소비자들이 구제신청을 해 왔습니다. 당시로서는 피해구제가 될 것인지가 확실치 않은 상황이었는 데 그 중에 어느 한 분이 만약 피해구제가 이루어진다면 회비를 내고 회원이 되겠다고 약속하셨답니다.

뭐 꼭 회원이 되어서 단체를 후원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하는 실무자들로서야 기분 괜찮은 덕담인 셈이죠. 그런데 피해구제가 이루어져서 이 분은 상당한 정도의 보험료지급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보험료를 수령하는 날 실무자와 함께 보험사를 가게 된 이 분은 보험료를 수령해 나오면서 보험사앞의 신호등에서 신호를 기다리다 말고 냅다 뛰어 사라지셨답니다. 갑작스런 사태에 당황한 실무자는 그저 망연히 쳐다보다 사무실로 돌아 올 수 밖에 없었다는 거지요. 또 시민단체에 전화해서 이런 저런 요구를 걸고 캠페인해라, 싸워달라는 주문과 주장을 하시는 분들도 많은 데 이 분들께 회원가입을 해서 적극적으로 함께 하실 것을 요청드리면 열에 일곱, 여덟분은 다음에라고 하시면서 전화를 내려놉니다.

시민단체에 대한 신뢰는 있으나 아직 '참여'로 까지 나아가고 있지 않은, 그래서 '여론'으로 머물러 있는 것이지요.

물론 반면에 끝까지 자신의 이름은 숨기면서 뜻있는 써달라고 적은 돈이라도 보내시는 분, 지하철에 2교대, 3교대로 근무하면서도 자원봉사를 하시는 분 등 우리를 훈훈하게 하시는 분들이 얼마든지 있지만 아직은 서구사회에 비해 우리 사회의 자원봉사나 시민단체 참여율이 저조한 것은 분명합니다.

자, 시민없는 시민운동이라는 비판과 반론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시민없는 시민운동이라는 비판을 평면적으로 제기한 것이라면 회원확대로 답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시민들이어야 하는 지에 대한 제기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률적으로 시민운동의 모습을 획일화해서도 안되지만 시민운동이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면 여러 다양한 수준에서 조직화된 시민들이 움직이는 사회가 되도록 해야 한다는 그 비판의 정신은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시민정신에 대해 새삼 생각하게 될 것이고 우리는 그런 시민들의 지원과 참여아래 우리 사회의 변화를 이루어내는 데 일조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승창(함께하는 시민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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