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딩크 수기]<2>한국축구와의 인연

  • 입력 2002년 7월 2일 18시 25분


'해냈습니다'
'해냈습니다'
《2000년 11월 대한축구협회로부터 한국대표팀 감독직 제안을 받고 매우 영광스러웠다. 한 국가의 축구대표팀 감독을 맡는다는 것은 그 나라를 대표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주변에서도 큰 도전이니 해보라고 했다. 월드컵 개최국 감독이라는 점과 내게 접촉을 시도한 축구협회 관계자의 진지하고 프로다운 태도도 마음에 들었다. 나는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심사숙고한다. 하지만 때로는 느낌을 믿을 때가 있다. 내가 함께 일하게 될 사람들이나 그 사람들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에 대해 어떤 느낌이 올 때가 있다. 그 사람들과 가슴을 열고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그 느낌이 더욱 강해지기도 한다. 이럴 때는 생각보다는 느낌을 믿게 된다. 어떤 경우에는 이런 느낌이 매우 빨리 오기도 한다. 한국의 경우가 그랬다.》

감독직을 수락하기 전까지 내가 한국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을 떠올려 봤다. 98년 프랑스월드컵 때 한국팀을 본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때 봤던 선수 중 일부는 내가 이끌어온 현 대표팀에도 소속됐다.

그당시 한국 선수들은 다소 소극적(modest)이었다. 물론 나는 한국에 대해 많이 알지 못했다. 한국이 상대팀이었기 때문에 정보를 수집하려고 노력했지만 한국팀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당시 기자들도 한국팀에 대해 취재하려고 했지만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는 말들을 했었던 것 같다. 내가 이끌던 네덜란드팀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졌지만 한국은 상대적으로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글 싣는 순서▼

- [히딩크 수기]<1> 제2의 조국 대한민국
- [히딩크 수기]<2> 한국축구와의 인연
- [히딩크 수기]<3> 컨페더컵-골드컵 시련딛고
- [히딩크 수기]<4> 평가전 잇단 선전 희망을 봤다
- [히딩크 수기]<5> 16강 약속 지키다
- [히딩크 수기]<6> 8강에 이은 4강 신화

감독직을 수락하고 한국팀 경기 테이프를 구해 봤다. 그해 아시안컵 경기를 포함해 30개 정도였던 것 같다. 12월20일 한일 정기전이 끝난 후에는 한국 대표팀 선수 개개인의 장단점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경기 테이프를 보니 기술적으로는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한국 선수들은 대부분 양발을 자유자재로 써 나를 놀라게 했다. 나는 한국팀의 문제점은 체력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한국에 들어와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을 만났다. 분명한 목표를 정하고 원칙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정 회장은 내가 한국팀의 전력을 상승시키는 데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조건을 제공해 주기로 약속하며 “목표는 우승”이라고 했다.

나는 그게 마음에 들었다. 목표가 있으면 솔직하게 내놓고 표현하는 것이 좋다. 목표를 세우는 데 겸손할 필요는 없다. 목표를 분명하게 정하는 것이 좋고 목표는 높을수록 좋다.

한국팀이 그걸 증명했다. 목표를 높게 정하게 되면 더욱 노력하게 된다. 높은 목표에 다가갈 수 있게 된다. 나는 지금까지 높은 목표를 정하고 그걸 성취하기 위해서 노력한 한국과 한국팀이 자랑스럽다.

이듬해 1월12일 울산에서 선수들과 처음 만났다. 처음에는 선수들과 의사소통이 잘 안돼 애를 먹었다. 물론 훌륭한 통역사가 있긴 했지만 선수들이 내게 조금 거리를 느끼는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서로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 있게 됐다.

올해 들어서는 코치나 선수들에게 이야기할 때 통역이 필요 없었다. 선수들도 내게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영어를 잘 하지는 못해도 아는 몇 단어를 가지고 내게 이야기했다. 나는 선수들에게 호텔에서나 휴식시간에 영어를 공부하라고 권했다.

당시 나는 선수들이 대화를 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했다. 물론 나는 한국은 후배가 선배를 존경하는 사회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한국 사회를 존중한다. 하지만 팀워크를 위해 조금 바꿀 필요가 있었다. 선후배간의 벽이 있으면 팀워크를 100% 발휘할 수 없게 된다.

나는 나이별로 친한 선수끼리만 앉아 먹는 식사 습관부터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식사시간에 선후배가 함께 앉아야 다양한 대화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수들에게 식사시간을 엄수하도록 지시했다. 함께 시작해 함께 끝내도록 했다. 테이블에 선후배가 고루 섞여 앉도록 했다. 식사시간 중에는 일절 사적인 전화도 못 받게 했다. 선수들이 처음엔 불편해 했다. 나는 선배들을 불러 후배들에게 가깝게 다가가서 서로 격의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느낌을 나누라고 했다.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지시하는 위치에 서게 되면 후배들이 충분히 역량을 발휘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처음 감독직 제의를 받았을 때 축구협회 관계자에게 “내가 선수들에게 나무에 올라가라고 하면 그대로 하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영웅보다는 독재자가 되기를 원했다. 스타에 의존하기보다는 팀 전체가 기계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조직력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수들의 헌신이 필요했다. 규율도 필요했다. 선수들이 처음에는 옷을 마음대로 입었는데 이동 중에도 복장을 통일하도록 했다. 모든 일과도 내 시계에 맞추도록 했다. 규율을 세우기 위해서였다.

나에게 신사적이다는 평가는 선수들이 규칙과 규율을 지켰을 때는 맞는 말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는 아니다. 규율과 규칙이 나를 지금 이 자리에 있게 했다.

물론 선수들의 프라이버시는 존중했다. 지난해 고종수 선수가 물의를 일으켰을 때도 나는 개의치 않았다. 대표팀 소집 기간 중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내가 요구한 조건만 충족시켜 주면 그걸로 만족한다. 나머지는 모두 선수들이 자율적으로 판단해 행동하면 된다.

한국 선수들은 대단히 순수했다. 내 요구 조건을 기대 이상으로 잘 따라줬다. 학습 속도도 내가 지금까지 지도한 선수들 중 가장 빨랐다. 나는 지금도 선수들에게 감사한다. 어디서도 이런 선수들을 만나는 행운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한국과의 첫 만남에서 잊을 수 없는 일이 하나 있다. 선수단과 처음 만난 날 저녁 함께 식사를 하러 갔는데 도무지 젓가락을 들 수 없었다.

내가 마늘 냄새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코치들이 살아 움직이는 낙지를 먹어보라고 권했을 땐 현기증마저 났다. 한국 음식에 적응하지 못한 건 지금도 미안하다. 선수들에 비해 나의 헌신이 부족했기 때문일까.

정리〓배극인기자 bae2150@donga.com

신치영기자 higgledy@donga.com

◇거스 히딩크 감독 프로필

▽국적〓네덜란드

▽생년월일〓1946년 11월 8일

▽가족〓아내와 자녀 2명

▽선수경력(포지션 MF)

-1967∼1970 데 그라프샤프(네덜란드 1부)

-1970∼1971 PSV 아인트호벤(네덜란드 1부)

-1971∼1976 데 그라프샤프(네덜란드 1부)

-1976 워싱턴 디플로매츠(미국)

-1977 새너제이 어스퀘이크(미국)

-1978∼1981 넥니메겐(네덜란드 1부)

-1981∼1982 데 그라프샤프(네덜란드 1부)

▽지도자 경력

-1981∼1983 데 그라프샤프(네덜란드) 코치

-1983∼1985 PSV 아인트호벤(네덜란드) 코치

-1986∼1990 아인트호벤 감독

-1990∼1991 페네르바흐체(터키) 감독

-1991∼1994 발렌시아(스페인) 감독

-1995∼1998 네덜란드 국가대표팀 감독

-1998∼1999 레알 마드리드(스페인) 감독

-1999∼2000.5 레알 베티스(스페인) 감독

-2001∼ 한국국가대표팀 감독

▽주요 입상 경력

-1986∼1988 3년 연속 정규리그 우승 (아인트호벤)

-1988 UEFA컵

우승(아인트호벤)

-1988 네덜란드

FA컵 우승(아인트 호벤)

-1996 유럽선수권 8강(네덜란드대표팀)

-1998 98프랑스

월드컵 4위(네덜란 드대표팀)

-1998 도요타컵

우승(레알 마드리드)

-1998∼1999 스페인리그 2위(레알 마드리드)

-2002 2002한일월드컵 4위(한국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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