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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속으로]참혹한 삶의 경계 DMZ에 청춘을 담다

입력 2000-10-20 19:16업데이트 2009-09-22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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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청호
■'갱스터스 파라다이스'/ 박청호 지음/ 321쪽 7500원/ 문학과지성사

박청호의 신작 장편 ‘갱스터스 파라다이스’는 제목부터 통속적이다. 사실은 제목 뿐 아니라, 혼음과 폭력이 난무하는 내용 역시 부인할 수 없을 만큼 통속적이다. 은행강도인 현역병 정수, 범행현장에서 우연히 만난 정수를 사랑하는 여대생 은채, 정수의 호의로 은채와 참호 속에서 섹스를 나누는 하사 철호, 요인들의 암살과 테러, 그리고 한국은행 털기―‘갱스터스 파라다이스’에서는 이렇게 통속적인 이야기들이 서로 뒤얽히며 사건이 전개되고 있다. 그래서 독자들은 자칫 이 작품을 한편의 단순한 통속소설로 치부해버리기 쉽다. 그러나 뜻밖에도 저자가 쓴 ‘작가 후기’는 전혀 통속적이지 않고 한없이 무겁고 진지하기만 하다. 그것은 곧 작가가 일견 통속소설처럼 보이는 이 작품 속에 사실은 중후한 주제를 깔아놓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갱스터스 파라다이스’의 가장 중요한 모티브는 DMZ이다. 주인공이 밤마다 바라보며 지키고 있는 지역, 남과 북이라는 두 현실 사이에 존재하는 신화적인 공간, 무장이 해제된 곳, 이데올로기와 권력의 손이 닫지 않는 곳, 그리고 자연 생태계가 아직 훼손되지 않은 채 보존되어 있는 태고의 지역, 그곳이 바로 DMZ이다. 그러나 DMZ는 결코 유토피아가 아니다. 이데올로기와 정치권력에 의해 접근이 금지된 곳, 지뢰가 매설되어 있는 곳, 순찰도중 언제라도 적군과 마주칠 수 있는 곳, 그래서 죽음의 위험이 상존해 있는 지역 또한 DMZ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곳 DMZ에서 은채는 북한병사와 섹스를 나누고, 그 북한병사는 은밀한 거처 속에 몸을 감춘 채, 단 한번 사랑을 나누었던 여성 은채를 마치 유토피아처럼 그리워한다.

DMZ는 남북의 병사들이 총대를 마주 대고 있는 곳에 존재한다. 그러나 박청호의 소설에서 DMZ는 단순한 분단의 상징이 아니라, 결코 그 선을 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우리 모두의 삶의 경계의 상징으로 확대된다. 작가는 “DMZ, 참혹한 삶의 경계. 그러나 그 경계를 넘는다는 것은 가혹한 벌을 감내하겠다는 의지의 발현이다. DMZ는 내 청춘의 끝이었고, 절망이었다”라고 말한다. 과연 한국인들에게 DMZ는 현실과 역사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얻을 수 있는 신화적 공간이면서, 동시에 끝내 그 경계를 넘을 수 없는 비극적 역사와 현실의 산물이다. 그래서 DMZ는 오직 갱스터와 테러리스트―즉 경계를 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현실과 정치권력에 도전하고 대항하는 사람―들만의 파라다이스가 된다.

작품의 마지막에 정수는 한국경제의 상징인 한국은행을 털다가 예기치 않는 폭발로 인해 행방 불명된다. 사람들은 그가 어쩌면 훔친 돈을 갖고 DMZ로 들어갔는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DMZ는 신화적인 공간으로 승화된다. 체제에 저항하다가 죽은 후에야 정수는 비로소 경계를 넘어 자신이 그렇게도 추구하던 DMZ로 들어갔다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자유를 위해서/비상하여본 일이 있는/사람이면 알지/어째서 자유에는/피의 냄새가 섞여있는가를”이라고 노래한 김수영 처럼 정수는 오직 죽음으로서만 자유를 얻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갱스터스 파라다이스’는 쌍둥이, 정상과 뇌성마비, 군대와 사회, 법과 범죄 같은 이중 모티프와, 시점의 다양화(예컨대 같은 장면에 대한 각기 다른 화자에 의한 묘사) 같은 뛰어난 문학적 장치들과, 젊은 세대의 감각에 맞는 빠른 템포와 사건 전개, 그리고 극도의 고독과 단절의식이 배어나는 문체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 소설의 내용과 구도가 과연 작가가 의도하고 있는 중후한 주제를 충분히 담아내고 있는가, 하는 문제에 이르면 다소 유보적이 된다. 작품의 제목도 사실은 ‘DMZ’라고 붙이는 것이 더 적절했을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이 소설에 이끌리는 이유는, 그것이 진지함과 순수를 비웃으며 결국 인생이란 통속적이라는 것, 다만 저항과 고뇌, 그리고 꿈과 자유의 부단한 추구를 통해서만 우리의 세속적 삶은 신화로 승화된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김성곤(문학평론가·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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