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사람들]「애완견키우기」출발은 더불어 사는 예의

  • 입력 1998년 10월 14일 19시 57분


‘입주민 여러분, 현재 저희 아파트에서는 개 짖는 소리와 방뇨가 입주민들 사이에 분쟁의 소지가 되고 있습니다. 쾌적한 공동생활을 위해 개 사육을 금하니 애완견을 키우고 계신 가구의 많은 협조 부탁드립니다.’

최근 아파트 단지에서 심심치 않게 눈에 띄는 안내문이다.

7, 8년전만 해도 아파트에서 개는 눈칫밥을 먹으며 컸다. 오죽하면 성대수술까지 받았을까.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오히려 눈치주면 이상한 사람이될 정도다. 개 기르는 가구가 늘고 심정적 연대감이 생기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대도시 아파트가구의 15% 가량이 개를 키운다는 게 개사료회사나 동물약품업계의 말.

그러나 이 세상 어디에서도 공동주택에서 애완동물은 거주권한을 갖지 못한다. 공동주택이란 주민, 즉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사는 공동의 공간이기 때문. 서울 서초구 반포동 모 아파트의 청소원 아줌마 말. 새벽에서 나와 보면 화단이나 계단, 복도에서 개의 오물이 발견되기 일쑤란다.

또 주부 신모씨(34)는 “요즘 사람들을 우습게 보는 왕자병 공주병 걸린 강아지들이 많아 가끔 아이들이 기겁을 하고 집에 뛰어 들어온다”고 말한다. 개 키우기를 반기지 않는 사람들의 한결같은 지적은 더불어 살려면 제대로 관리해야 한다는 것.

스위스의 공원에 가면 ‘로비독’이라고 쓰인 작은 통이 놓여있다. 산보중에 개가 실례하면 그것을 잘 치우라고 둔 작은 비닐백이다. 우리도 대부분 화장지를 들고 다니며 치워 큰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준비성없는 개주인 탓에 피해보는 이웃도 적지 않다.

아예 금지시킨 곳도 있다. 적발시 벌금 20만원을 물린다는 아파트도 있었다. 서울 강남의 몇몇 아파트는 월 5만원의 추가 관리비를 받으려다 항의를 받기도 했다.

건국대 축산대 동물병원의 수의사 최치봉(崔致奉·27)씨는 “오물처리비 등을 내면서 키운다면 주위의 저항도 수그러들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미국의 아파트에서는 입주시 2백∼3백달러 정도의 보증금을 받아 두었다가 애완동물로 인한 피해 발생시 사용한다.

서울 서초구 잠원동 아파트에서 10년째 개를 키워온 김모씨(40·여)는 “개를 혐오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잊지만 않는다면 별 마찰없이 키울 수 있다”며 개 키우는 사람의 ‘매너’를 강조했다. 그는 여러 마리의 개를 키워왔지만 이웃과 문제가 된 적이 없었다고 한다.

한국동물보호연구회 윤신근(尹信根·45)회장도 “기본 매너만 잘 지킨다면 아파트 이웃간에 얼굴 붉힐 일이 없지 않을까요”라고 말한다.

〈이명건기자〉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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