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문화 바꾸자②]『폭력시위 조장세력 법집행 엄정을』

  • 입력 1998년 5월 5일 20시 15분


‘집회신고서’에는 언제나 이렇게 적혀 있다.

‘법에 따라 준수사항을 이행하고 경찰관과 질서유지인의 현장지시에 따르겠습니다.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거나 사용하는 참가자가 있으면 즉시 회수해 제출하겠습니다. 과도한 소음을 유발해 생활환경을 저해하거나 업무를 방해하는 일도 없도록 하겠습니다.’

근로자의 날인 1일의 집회 및 시위를 앞두고 주최측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경찰에 제출한 집회신고서도 꼭 그대로다.

신고서대로라면 이날 집회도 평화롭게 진행됐어야 했다. 그러나 돌이 날아다니고 최루탄이 발사되며, 세계 사람들이 주시하는 폭력시위로 발전하고 말았다.

좁은 서울 종묘공원에 2만5천명이 운집해 시가행진을 시도하는 바람에 차도가 일부 시위대에 의해 점거될 수밖에 없었다. 경찰은 “집회신고서 내용대로 공원 위로 올라가라”고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한총련 대학생들과 전경들 사이에 몸싸움이 시작됐다. 불법은 또 다른 불법과 폭력을 불러일으키고 말았다. 한총련 대학생들은 즉시 준비해온 쇠파이프로 무장했고 경찰은 최루탄으로 맞섰다. 집회장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대학생들은 최루탄에 맞서 돌을 던졌다. ‘분쇄’ ‘투쟁’ ‘박살’같은 구시대의 살벌한 용어들이 되살아났다. 흥분한 일부 노조원들은 3백명의 질서유지인과 민주노총 지도부의 만류를 무시한 채 돌멩이를 쥐고 거리로 뛰쳐 나갔다.

집회신고서에 약속한 ‘합법과 평화’는 휴지조각이 되고 폭력이 난무하는 서울거리는 세계의 구경거리가 되었다.

우리 헌법은 국민 기본권의 하나로 ‘집회 및 시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집회의 자유는 권위주의 시대의 종식과 더불어 크게 확대됐다. 집회 허가제도 신고제로 바뀌었다. 이에 따라 공권력이 집회를 선별적으로 ‘허가’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서울지검 공안1부 신태영(申泰暎)부장검사는 “정부와 법원에 의해 이적단체로 규정되지 않은 단체의 집회 신고는 원칙적으로 모두 받아들이며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집회의 자유가 무제한적인 것은 결코 아니다. 법학자들은 “집회는 집단적 행위이고 공공질서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집회의 자유는 공익이나 다른 사람의 기본권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한계가 있다”고 한결같이 말한다. 집회의 자유의 한계는 무엇보다 평화적 비폭력적이어야 한다는 데 있다는 것.

그러나 이 땅에서 집회의 자유의 한계는 무너지기 일쑤다. 걸핏하면 불법 폭력시위로 치닫곤 했다. 법조인들은 그 이유를 우리 정치 사회의 역사적 특수성에서 찾고 있다. 정당성이 결여된 정부와 군사 독재정권 같은 요소들이 청년 학생 그리고 근로자의 ‘폭력적’항의라도 용인해 주는 풍토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군사 독재정권 아래서는 정권 자체가 불법 폭력의 상징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항하는 집회나 시위 과정의 웬만한 불법 폭력은 용인됐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시대 상황이 바뀐 만큼 그런 폭력시위 관행과 타성도 바로잡혀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폭력시위를 ‘전문적’으로 조장하는 세력에 대한 엄격한 법집행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조영황(趙永晃)변호사는 “정당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그 절차와 방법도 정당해야 한다. 진정한 민주사회는 자기주장을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평화적으로 표출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시민들의 호응을 받는 평화적인 시위문화의 정착은 우리 사회가 선진사회로 진입하기 위해 꼭 필요한 조건이다”라고 말했다.

〈이수형·신석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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