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률 시인의 홋카이도.문.답]<3>사람은 술을 빚고, 술은 자연을 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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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3월 6일 17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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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술도가에 들렀다. 꽤 오랫동안 꿈꾸어 왔던 일이었다.

일단 술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술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고 싶어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술 마시는 사람으로서 계급장 하나를 더하는 일쯤일 것이다.

오타루의 대표 청주(淸酒)인 <기타노호마레․ 北の譽>를 만드는 술도가는 입구에서 풍기는 외관부터 장엄했다. 아마도 이름이 주는 뉘앙스도 한몫했겠지만 겨울 동안 내린 눈을 쓸어 양옆에 쌓아놓은 길이 그러했고, 쌀 찌는 증기가 오래된 술도가를 휘감고 있는 모습이 특히 그러했다. 물론 그 흰색의 풍경들을 더 진하게 완성시키고 있는 건 그 집을 지키는 듯한 개 한 마리와 함께 산책을 나온 어떤 노인의 모습이었다.

엄청나게 쌓인 쌀 부대와 그 쌀을 씻기 위해 만들어진 기계들 틈을 지나, 쌀을 찌고 있는 인부들과 눈인사를 나누었다. 그들의 눈빛은 장인의 에너지로 반짝였고 묵묵했으며 꽤 묵은 듯한 정이 느껴졌다.

몇 해 전 삿포로의 어느 술집에서 한 잔을 시켜 먹은 적 있었던 술, 그 술을 만드는 술도가를 찾아오게 될 줄은. 130cm의 흰 눈을 지붕 머리에 이고 있는 술도가에 들어서면서 나는 조금 신명이 났고, 130년이 넘는 술도가의 고집스럽고 오래된 술 빚는 방식들 앞에서 그냥 마냥 좋았다.

쌀 찌는 냄새와 술이 익는 냄새, 자연이 인간을 위로하는 과정에서 나는 냄새가 그러할까. 술도가 안에 가득 찬 김을 쐬고 있노라니 술이란 것은 적당히 즐길 수 있다면 인간에게 위안인 동시에 선물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방문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그곳에서 만든 술들을 맛보겠냐는 괜찮은 제안을 받았다. 한 잔, 반 잔, 그리고 반의 반 잔을 마셨다. 이상할 정도로 강하게 물 맛이 났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술은 사람과 함께 마시는 것이고 대화가 곁들여지는 것이고 또 게다가 안주가 필요한 것이고 또 거기에 분위기와 인생의 희노애락까지 합쳐지는 것이니 시음이 주는 즐거움 정도로는 술의 근본에 닿을 수 없노라고.

반대의 작용인지는 몰라도 그 술도가의 매장에서 나는 이상하게도 단맛이 나는 뭔가가 그리워졌다. 그래서 아주 좋은 향이 나는 매실주 한 병을 샀다. 좋은 인연과 나누고 싶은 마음이었다. 좋은 사람은 그 술을 마주하면서 삿포로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할 것이고 나는 과한 듯 아니면 어쩌면 농담인 듯 홋카이도에 빠져 있는 내 자신의 이야기들을 늘어놓게 될 거라 생각했다.

어느 땅을 밟고 있느냐에 따라 우리의 심장도 박동수가 달라진다. 어디를 그리워하느냐에 따라서도 마찬가지. 나는 오늘밤, 나에게 술 한 잔을 권하려고 한다. 그리고 130년의 전통을 지켜온 그들과 건배를 할 것이다. 그러면 창밖으로는 또 그립게 그립게 눈이 나릴 것이고, 나는 그 눈의 우아함과 쓸쓸함이 시키는 대로 조금 마음을 적실 것이다.

시인 이병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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