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엔 실수로 진 줄 알았는데… 이젠 인공지능이 두려워”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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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연패 지켜본 시민들 충격
알파고 연관검색어로 ‘포비아’… 일부 “기계 파괴운동 벌여야 하나”
“스타크 AI 박살냈다” 분풀이에, ‘플러그 뽑으면 이긴다’ 허무개그도

“하도 분해서 ‘스타크래프트’(게임)를 했어요. 스타크래프트 인공지능(AI)을 박살냈습니다.”

10일 오후 한 누리꾼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스타크래프트 전투에서 승리한 화면 사진도 함께 게재했다. 이기기 쉬운 게임 속 인공지능에 분풀이를 한 셈이다.

이 사진은 이세돌 9단이 10일 AI 알파고와의 대국에서 또다시 패한 것을 본 사람들의 심리를 극명히 보여 준다.

이날 오후 5시경 제2국에서도 이 9단이 패한 사실이 알려지자 단순한 패배를 넘어 “인류가 걱정된다”, “자존심 상한다” 등 인공지능 개발 자체에 대한 염려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인터넷 게시판에 확산됐다. 회사원 김승백 씨(40)는 “9일 첫 대국 패배 때만 해도 인간의 실수라고 봤는데 오늘도 이 9단이 지니 인공지능이 두렵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포털사이트에는 ‘이세돌’ ‘알파고’ 등의 연관 검색어로 ‘인공지능 포비아(공포증)’,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디스토피아를 그린 영화 ‘매트릭스’ 등이 오르내리기도 했다. “온전한 인공지능의 개발은 인류 종말을 불러올 수 있다”고 말한 스티븐 호킹 박사의 경고를 되새기거나 “알파고를 이기려면 전원 플러그를 뽑으면 된다”는 ‘허무 개그’를 게시판에 올리는 사람도 있었다.

일부는 기계에 대한 분노를 드러내기도 했다. 사람들은 알파고의 승리가 ‘터미네이터’ 같은 영화처럼 ‘기계의 시대’가 도래하는 신호탄이 아니냐며 우려했다. ‘제2의 ‘러다이트(기계 파괴) 운동’을 추진하자는 주장도 SNS와 온라인상에서 확산됐다. 회사원 임지혜 씨(26)는 “친구들끼리 러다이트 운동을 벌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소리까지 나올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는 1811∼1817년 당시 공장 기계화로 영국 노동자들이 알자리를 잃자 나온 ‘기계 파괴 운동’이다.

양윤 이화여대 심리학과 교수는 “인간이 인공지능, 컴퓨터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의외의 결과가 나오자 인정할 수 없는 심리가 생겼고 이런 심리는 패닉과 스트레스 반응으로 이어졌다”며 “이에 ‘이젠 끝났구나’ 하는 두려움과 반대로 ‘이대로 물러날 수 없다’는 투쟁 반응이 동시에 나온 것”이라고 분석했다.

직장인들도 삼삼오오 모여 각종 직업이 미래에 인공지능으로 대체될지에 대해 토론하기도 했다. 미래학자들은 운전사와 택배기사 등 단순직뿐 아니라 의료, 법률, 주식 등의 직업군도 인공지능으로 축소될 것으로 전망한다. 기술철학의 대가 베르나르 스티글레르 프랑스 퐁피두센터 혁신연구소장은 “20년 안에 세계 일자리의 50%가 사라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지나치게 염려할 필요는 없다고 지적한다. 김홍중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미 자동항법장치, 인공위성 등 AI 관련 기술이 우리 삶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다만 오늘 승부는 이를 압축적으로 드라마틱하게 보여 준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시민들은 인류 대표이자 한국 대표로 나선 이 9단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도 나타냈다. 회사원 강석원 씨(53)는 “예전 박찬호를 보고 사람들이 희망을 얻은 것처럼 이번 대국이 그런 계기가 되길 바랐는데 아쉽다”며 “아직 대국이 3번이나 남았으니 이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윤종 zozo@donga.com·유원모 기자
#인공지능#바둑#이세돌#알파고#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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