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손효림]타인을 생각하는 공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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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효림 문화부 기자
손효림 문화부 기자
 “공부 안 하면 어떻게 된다고?”

 서너 살쯤 돼 보이는 남자 아이의 엄마가 지하철에서 10대 소년을 검지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한눈에 봐도 지적장애가 있는 소년이 승객들에게 생활비와 치료비가 필요하다며 도와달라고 더듬더듬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이는 엄마의 말에 고개를 몇 번이나 깊숙이 끄덕이며 소년이 지하철 옆 칸으로 옮겨갈 때까지 뚫어져라 바라봤다. 아이 엄마의 손에는 영어학원 이름이 큼직하게 써진 가방이 들려 있었다.

 수년 전 지하철에서 본 광경이다. 하염없이 소년을 바라보던 맑은 눈망울의 아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공부가 일신의 평안을 추구하는 도구가 돼 버린 현실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확인한 순간이었다.

 따지고 보면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대학에 가기 위해, 취직하기 위해, 승진하기 위해, 공부는 그 무엇을 위한 수단이 된 지 오래다. ‘공부해서 남 주자’는 말은 낭만적이지만 뒤집어보면 그만큼 나만을 위한 공부를 하고 있다는 걸 방증한다. 국회의원을 지낸 한 변호사는 법조인, 정치인이 된 이유를 묻자 “출세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편한 자리에서 오간 말이었기에 솔직한 답변이었다고 생각한다.

 요즘 사회적 현안이 불거질 때마다 관련 책의 판매가 급증하고 있다. 최순실 씨의 국정 농단으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급물살을 타자 헌법을 소개하고 의미를 짚은 ‘지금 다시, 헌법’을 비롯해 사회 문제에 맞서 싸우라고 호소한 ‘분노하라’, 한국 사회의 부조리를 비판한 ‘한국이 싫어서’ 등의 판매가 껑충 뛰었다. 이세돌 9단과 알파고가 격돌했을 때는 ‘김대식의 인간 vs 기계’, ‘인간은 필요 없다’처럼 인공지능(AI)을 다룬 책이 주목받았다. 책을 읽고 이슈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려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이다. 이들이 공부하는 이유는 순수한 앎을 위해서일 수도 있고, 변화하는 미래에 대처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한 공부가 나쁜 게 아니다. 사회적 약자를 ‘공포의 타산지석’으로 삼아 이기적인 공부를 강요하는 게 문제다. 그런 시각이 확장되면 시간과 노력을 들여 공부했다는 이유만으로 과도하게 보상받으려는 심리가 커진다. 이런 경향은 소위 ‘가방 끈이 긴’ 사람이나 각종 고시에 합격한 이들에게서 강하게 나타나는 듯하다.

 대학 때 특강에서 여성학자이자 가수 이적의 어머니인 박혜란 씨는 남녀평등에 대해 강의한 후 이렇게 당부했다.

 “많이 배울수록 자기만 챙겨서는 안 됩니다. 다른 사람도 돌아볼 줄 알아야 합니다.”

 여성학 수업에서 의외의 마무리였다. 돌이켜보면 여성학을 비롯해 어떤 종류의 학문이든 나만 잘살기 위한 공부는 진정한 공부가 아니라는 의미였을 것이라 생각해 본다.
 
손효림 문화부 기자 aryssong@donga.com
#타인#박혜란#남녀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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