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신수정]황금양털상과 밑빠진 독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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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정 산업부 기자
신수정 산업부 기자
 황금양털상(Golden Fleece Award)이라는 게 있다. 미국의 상원의원이었던 윌리엄 프록스마이어가 만든 상으로 1975∼1988년 매달 낭비가 가장 심한 정부지원 프로그램을 선정해 준 상이다. ‘Fleece’가 명사로는 ‘양털’이고 동사로는 ‘빼앗다’는 의미여서 지어진 이름이다. 이 상 덕분에 정부기관의 예산 낭비가 크게 줄었다고 한다.

 이번 국정감사에도 황금양털상을 받을 만한 여러 예산 낭비 사례가 지적됐다. 일부만 소개하면 위험한 화재 현장에 소방관 대신 들어갈 수 있도록 33억 원을 들여 도입한 소방로봇이 고장이 잦은 이유로 출동도 제대로 못해 보고 골칫거리로 전락한 사례가 있다. 853억 원의 혈세를 집어삼킨 인천 월미은하레일도 운행 한번 못해 보고 철거될 신세에 놓여 있다. 공사 기간이 부족한 상태에서 무리하게 추진하다 부실시공으로 안전성 문제가 불거졌기 때문이다.

 활용도가 낮아 오래전부터 지적된 공공 앱은 이번 국감에서도 도마에 올랐다. 국민의당 이용호 의원에 따르면 9월 말 기준 1242개의 공공 앱이 운영 중인데 이 중 57%는 이용자가 1만 명도 채 되지 않는다. 다운로드 수가 500건이 안 되는 앱도 159개나 되는 것으로 집계됐다. 공공 앱 개발비에 투입된 예산은 692억 원이다. 각 지자체와 정부 출연기관에서 이용자 분석을 철저히 하지 않고 박근혜 정부가 추진 중인 ‘정부 3.0’에 맞춰 경쟁적으로 앱을 출시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25일부터 국회의 예산 심사가 시작됐다. 내년도 정부 예산은 400조7000억 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국회는 상임위별로 예산안 심사를 끝낸 후 12월 2일까지 의결해야 한다. 어수선한 정국에 시일까지 촉박해 과연 제대로 된 예산 심사가 이뤄질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1998년부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함께하는 시민행동 등을 거치며 예산 감시 활동을 하고 있는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은 최근 국회에서 내년도 예산안 가운데 꼭 줄여야 할 것들 50선을 선정해 발표했다. ‘최순실 게이트’ 등 권력형 비리와 연계된 사업, 대선을 앞둔 선심성 특혜성 사업, 관행적인 낭비성 사업 등이 대거 포함됐다. 정 소장은 “이런 예산들 때문에 위기 가구를 돕는 긴급복지 예산, 취약계층 아동을 위한 드림스타트 예산 등 민생복지 예산이 대거 삭감됐다”고 말했다.

 나라살림연구소는 2000년 8월부터 2003년 1월까지 매달 진행했던 ‘밑 빠진 독’ 시상을 부활시키는 것을 검토 중이다. 밑 빠진 독 시상식은 예산 낭비가 심한 정부 및 지자체를 선정해 밑이 없는 장독을 전달하면서 예산 낭비를 지적했던 행사였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26일 예산안 심사와 관련해 “국가적으로 어려운 상황일수록 예산국회를 제대로 운영하는 것이 우리 국회의 책무”라고 강조했다. 국민 생활과 직결되는 예산 심사마저 정치에 휩쓸려 공전하다 막판에 졸속 처리돼서는 안 될 것이다.

신수정 산업부 기자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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