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이승건]‘세계 랭킹’의 실상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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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건 스포츠부 차장
이승건 스포츠부 차장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을 앞두고 여기저기서 메달 전망을 내놨다. 대부분 배드민턴 남자복식에서는 유연성-이용대 조가, 양궁 남자 개인전에서는 김우진이 금메달을 딸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유-이 조는 8강, 김우진은 32강전에서 탈락했다. 물론 사격의 진종오(50m 권총)처럼 맞힌 것도 있지만 빗나간 게 더 많다.

이름 있는 기관들이 내놓은 전망은 믿음이 간다. 하지만 전 종목에 걸쳐 선수들을 면밀히 분석하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그들이 가장 앞세우는 근거는 손쉽게 확인할 수 있는 세계 랭킹이다. 유-이 조도, 김우진도 세계 랭킹 1위다.

리우 올림픽에서 한국의 세계 랭킹 1위가 무더기로 부진했던 종목은 유도다. 남자 유도는 전체 7체급 가운데 세계 랭킹 1위가 4명이나 됐지만 은 1개, 동 1개를 따는 데 그쳤다. 한국 유도가 ‘노 골드’였던 것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이후 처음이다. 이에 비해 세계 랭킹 1위가 한 명도 없던 일본 남자 유도는 금 2, 은 1, 동 4개 등 전 체급에서 메달을 땄다.

일부 종목에서는 무용론까지 나오고 있지만 세계 랭킹은 쓰임새가 많다. 나라별 출전 티켓 수나 대진표 작성의 기준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를 대하는 자세다.

한국 유도는 체급별 1진에게 국제대회 출전 기회를 몰아주며 세계 랭킹을 끌어올리는 데 주력했다. 실력을 떠나 대회를 많이 나가면 랭킹 포인트는 차곡차곡 쌓이기 마련이다. 반면 일본은 랭킹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국제대회에 1, 2, 3진을 고루 출전시켜 내부 경쟁을 강화하는 동시에 ‘유도 바깥’으로 눈을 돌렸다. 4년 전 런던에서 처음으로 노 골드(남자)의 수모를 당한 뒤 사령탑으로 선임된 이노우에 고세이 감독(38)이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준비한 전략이다. 세계선수권대회를 3연패했고 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땄던 그는 “진화하는 세계 유도에 대응하려면 종주국이라는 자존심을 버리고 다른 무도의 기술을 배워야 한다”며 세계 곳곳을 돌아다녔다. 반면 한국은 과거를 답습했다. 그저 땀을 많이 흘리고 랭킹을 높이면 올림픽 금메달이 따라온다고 생각한 것 같다.

용인대 출신인 서정복 감독(62)은 런던 올림픽에서 여자 대표팀을 맡아 노 메달에 그치고도 유임됐다. 대한유도회는 지난해 남자 대표팀 조인철 감독(40)이 훈련비 횡령 혐의로 수사를 받아 사퇴하자 서 감독을 ‘총감독’으로 격상시켜 남자팀까지 맡겼다.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에 나가 본 적이 없고 남자 대표팀 지도 경험도 없는 서 총감독은 “세계 랭킹 상위 선수들이 일본을 타도할 것”이라고 큰소리를 쳤지만 한국 유도는 일본을 만나기도 전에 줄줄이 나가 떨어졌다.

메달은 못 따도 좋다.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만으로도 선수들은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 다만 지도자의 전략 부재 때문에 선수들이 흘린 땀만큼의 결과를 얻지 못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리우에서 쓴 약을 먹은 세계 랭킹 1위들이 4년 뒤에는 활짝 웃을 수 있기를 바란다.

이승건 스포츠부 차장 why@donga.com
#리우올림픽#세계 랭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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