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신수정]어른들이 막을 수 있었던 죽음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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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정 산업부 기자
신수정 산업부 기자
“한 사람의 영혼이 파괴되는 학대 현장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어. 피해자, 가해자, 그리고 방관자. 그 셋 중에 하나만 없어도 불행은 일어나지 않아.”

“수많은 방관자 중에 단 한 명만이라도 눈을 떠준다면 한 사람의 영혼이 완전히 파괴되는 일은 없을 거야.”

이는 작년에 방영했던 드라마 ‘킬미힐미’에 나온 대사들로 많은 시청자에게 울림을 줬다.

올 3월, 일곱 살 아이를 친부와 계모가 잔인하게 학대해 숨지게 한 ‘원영이 사건’에 이어 최근 네 살짜리 여자아이가 햄버거를 먹고 난 뒤 화장실에서 양치질을 하다 쓰러져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 수사 결과 역시나 이 여아의 어머니도 딸을 상습적으로 때려온 아동학대 가해자였다. 이 비정한 어머니는 아이에게 햄버거를 주기 전 28시간 동안이나 딸을 굶겼다.

잊을 만하면 발생하는 아동학대 사망 사건이 근절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아동학대 가해자의 80%가 친부모라는 점을 들고 있다. 남의 집 가정사라는 이유로, ‘부모가 훈육하기 위해서 한다는데’ 같은 생각이 여러 방관자를 만든다는 것이다.

“다섯 살 연수가 죽었다. 연수는 유독 집에만 들어오면 똥오줌을 가리지 못했다. 그런 아이를 아빠는 때렸다. 목격자는 어른들이었다. 신고해야 했고 그래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주저하고 외면하고 회피했다. ‘아는 사이라서’ 어른들이 연수가 보낸 구조 신호를 무시하는 사이 아빠와 엄마는 약으로 연수의 멍을 지웠다. 어른들이 막을 수 있었던 죽음이다.” ―아동학대에 관한 뒤늦은 기록(시대의 창) 중에서

2013년 10월 울산 초등생 구타 사망 사건을 계기로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대한 특례법’이 제정되어 지난해 아동학대 신고 건수가 1만6650건으로 급증한 점은 그나마 다행이다. 특례법에서 교사, 의사, 구급대원, 복지시설 종사자 등 아동학대 신고 의무자 범위를 넓히고 학대 발견뿐 아니라 학대 의심일 경우에도 신고를 하게끔 한 덕분이다.

하지만 아동 1000명당 아동학대 발견율은 1.3명으로 미국(9.1명)과 호주(7.9명)보다 여전히 낮은 편이다. 아동학대 처벌 수위가 선진국 대비 낮은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팀이 2001년부터 지난해까지 15년간의 아동학대 사망 사건 판결을 분석한 결과, 10건 중 4건이 징역 3년 미만의 처벌인 것으로 나타났다. 어른들의 무자비한 폭력으로 숨진 아이들을 생각하면 지나치게 관대한 처벌이다.

아동학대는 성인이 아동의 건강 또는 복지를 해치거나 정상적 발달을 저해할 수 있는 신체적·정신적·성적 폭력이나 가혹 행위를 하는 것과 보호자가 아동을 유기하거나 방임하는 것을 말한다.

이웃집에서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지나치게 자주 들리거나, 계절에 맞지 않는 옷을 입거나, 곳곳에 멍 자국이 보이는 아이를 발견하면 더 이상 방관자가 되지 말자. 아이들이 보내는 간절한 신호를 알아채 도움을 줄 이들은 어른들밖에 없다. 용기 있는 어른이 늘어나 올해는 더 이상 가슴 아픈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한다.

신수정 산업부 기자 crystal@donga.com
#킬미힐미#원영이 사건#아동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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