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김창덕]자동화의 역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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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구글의 인공지능(AI) ‘알파고’가 ‘입신(入神·9단)’인 바둑기사 이세돌에게 승리하자 전 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기술에 대한 놀라움보다는 AI가 빠른 시간 내에 인간의 많은 역할을 뺏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더 컸다.

AI까지 갈 것도 없었다. 첨단화된 산업용 로봇들은 벌써 인간을 대신해 수많은 공장에 투입되고 있다. 그것들은 인간보다 훨씬 빠르면서도 실수 없이 제품을 척척 만들어낸다. 공장을 메우던 사람들의 땀 냄새는 기계 소음으로 대체됐다. 공장 자동화가 인간의 일자리를 서서히 잠식해 가고 있는 것은 틀린 얘기가 아니다.

그러나 우린 좀 더 이기적인 생각을 할 필요가 있다. 미국인의 일자리, 중국인의 일자리가 아닌 한국인의 일자리만 놓고 따져봐야 한다.

두 사례를 먼저 살펴보자. 세계 산업용 로봇 1위 기업인 일본 화낙은 자국 내에서만 38개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해외에는 공장이 한 곳도 없다. 산업용 로봇 전문회사인 만큼 자기 공장도 거의 자동화가 돼 있다. 화낙에서 일하는 임직원 수는 1500여 명으로 산업용 로봇 일꾼(3000개)의 절반밖에 안 된다. 이나바 요시하루(稻葉善治) 화낙 회장은 “일본처럼 임금이 비싼 나라에서 제조업이 생존하려면 자동화밖에 없다”고 했다. 자동화가 이뤄지지 않았다면 오직 일본 내에서만 공장을 운영하는 게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일본의 다른 업체와 달리 값싼 노동력을 찾아 해외 이전을 하지 않은 덕분에 1500명의 일자리를 지켜냈다는 말도 된다.

기자가 2014년 11월 방문했던 독일 지멘스의 암베르크 공장도 마찬가지다. 세계 최고의 ‘스마트 팩토리’라 불리는 이곳에는 전 세계 정부 및 기업 관계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자동화된 암베르크 공장은 25년 전보다 생산성이 8배나 높아졌지만 임직원 수는 1200명 수준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독일의 많은 기업이 인건비가 싼 동유럽 등으로 공장을 이전했지만 암베르크 공장은 스스로 혁신하는 길을 택했다. 당시 만났던 카를하인츠 뷔트너 지멘스 디지털팩토리 사업본부 부사장(현재는 퇴사)은 “기계가 사람을 대체한 것이 아니라 사람과 기계가 힘을 합쳐 생산성과 품질을 향상시킨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기업들도 이제는 글로벌화 된 곳이 많다. 해외 각국에 생산 거점을 마련해 놓고 각 공장의 경쟁력을 따져 생산물량을 조정한다. 국내에 있는 글로벌 기업들의 생산 공장 역시 본사 지침에 따라 일거리가 많아지기도 적어지기도 한다.

자동화는 공장 생산성 개선의 핵심 과제다. 산업용 로봇을 모두 디지털로 연결해 스스로 문제점을 찾아내고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제4차 산업혁명’이 해외 곳곳에서 현실화하고 있다. 국내 공장들이 생존하려면 이들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 인간의 일을 기계가 대체하는 자동화가 결국 ‘우리 일자리’를 지켜낼 키워드가 된 셈이다.

자동화의 역설이다. 지금 당장 나의 일을 로봇에게 넘겨주지 않겠다고 버티다 보면 우리 후손들은 그 기계들을 관리할 일자리마저 잃게 될지 모른다.

김창덕 산업부 기자 drake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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