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끝날 때까지]가해자 전학 보낸다고? 아직도 피해자만 눈물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4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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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학교폭력으로 2년간 시달리고 있어요. 지난달에는 정신과에 입원까지 했습니다. 그런데도 학교에서는 가해학생을 전학 보낼 수 없고 중학교도 같은 곳에 간다고 해요. 학교에 다닐 수 없는 상황인데, 이해를 못하는지 30일 현장체험학습에 나오라고도 합니다. 가해학생 부모 앞에서 죽는 게 복수인 것 같아 휘발유를 샀는데….”

정부가 전국 초중고교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한 19일, 서울 강남의 모 초등학교 6학년 아들을 둔 주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학교가 폭력사건을 방치해 피해자가 더 고통받는다”고 울먹이면서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면 안 되겠다 싶어서 마지막으로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 “왜 피해자가 피해야 하나요”

사건은 2010년 10월 22일 일어났다. 4학년이던 아들 A 군은 친구 B 군과 하교 중이었다. B 군을 평소 괴롭히던 C 군이 이날도 붙잡았다. 도와달라는 친구를 위해 A 군이 팔을 벌려 막았다. B 군이 빠져나가자 A 군도 돌아섰다. 화가 난 C 군이 뒤에서 달려와 등을 밀었다. A 군은 운동장에 있던 배수구 쇠철판 위로 넘어졌다. 앞니 2개에 금이 가고 주변 이까지 흔들릴 정도로 크게 다쳤다.

지난해 6월에는 미로장애 판정을 받았다. 계속 극심한 두통을 호소해 병원에서 진찰한 결과 사건 당시의 충격으로 오른쪽 평형기관 신경이 손상됐다는 진단이 나왔다. 이후 A 군은 신경안정제가 든 진통제를 복용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심리적 고통이었다. 치료비를 요구한 적이 없는데 “A 군 부모가 돈을 뜯어내려고 한다. 너네도 쟤랑 놀지 마. 다치면 보상해줘야 해”라고 C 군이 말하고 다니면서 친구들이 하나둘 떠났다. 흘겨보거나 욕을 하고, 다리를 발로 차고 지나갔다.

부반장까지 맡을 정도로 활달했던 A 군은 점점 내성적으로 변했다. 결국 지난달 27일에는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과 병동(주치의 신의진)에 입원했다. 심리상담을 통해 자살충동이 심각하다는 판정을 받은 뒤였다. 5학년 때는 C 군과 다른 층이었지만 6학년은 모두 한 층에 있어 정신적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다.

[채널A 영상]“학교는 나몰라라” 결국 경찰에 신고한 아이들

▼ “교육청, 신고 한달 넘도록 현장 안가봐” ▼

A 군의 부모는 재차 학교 측에 가해학생을 전학시키고 중학교는 같은 곳에 배치되지 않도록 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학교는 한결같이 안 된다고 했다.

이 학교의 교장은 “서로 치고받고 싸운 게 아니고 장난치다 이에 금이 간 거다. 이후 다른 폭력이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C 군을 전학시키기는 어렵다. 다만 중학교 배치 시 이런 사건이 있었다는 학교장의 의견을 쓰면 A 군이 다른 중학교에 갈 수 있다”고 말했다.

기자가 당시 상황에 대해 묻자 가해학생의 어머니는 “할 말이 없다”며 전화를 끊었다. 이어 남편이 전화를 걸어와 “기사를 쓸 게 그렇게 없냐”며 거칠게 얘기했다.

○ 진상을 숨기면서 피해자를 두 번 울려

교육과학기술부는 올 2월 학교폭력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가해학생과 학부모의 동의 없이 전학을 보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했다. 또 이달부터는 피해학생에게 학교안전공제회가 치료비를 우선 지원하고 그 금액은 가해학생에게서 돌려받는 제도를 도입했다. 학부모, 교사, 학생을 위한 매뉴얼도 보급했다. 가해학생을 엄벌하고 피해학생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학교폭력 피해자들은 아직 울고 있다. 학교가 여전히 학교폭력을 숨기는 데 급급하고 적극 대처하지 않는 현실 때문이다.

A 군의 어머니는 “학교만 믿고 기다린 내가 바보 같다. 이후에 서울시교육청과 강남교육지원청에 민원을 넣어도 서로 미루기에 급급했다. 학교가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도 열지 않아 지난해 10월 감사원에 민원을 넣었다. 한 달 뒤에 열리긴 했지만 가해학생을 떼어놓는 방안은 논의되지 않았다. 피해학생이 다른 중학교로 가야 하는 거냐”며 울분을 토했다.

중학교 2학년 아들을 둔 아버지 이모 씨도 “지난해 아들이 학교폭력을 당하면서 너무 답답했다. 교육청은 신고를 받고 한 달이 넘도록 학교에 안 가봤다. 피해자가 누구에게 조언 받고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곳도 없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학교폭력을 드러내고 해결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서울의 한 학교 교장은 “학교폭력 결과가 공개되면서 성실하게 응한 학교가 오히려 폭력 학교로 낙인찍히니 다음부터 차라리 조사에 응하지 않겠다는 반응이 나올 것 같아 우려된다. 이런 인식이 있다면 피해자는 영영 보호받지 못 한다”고 말했다.

조정실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장은 “피해자 부모들이 사건 초기가 아니라 상황이 너무 악화됐을 때 협의회를 찾아와 안타깝다. 학교폭력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학교와 부모들이 모두 모른다. 대응법을 널리 알리고 상담소도 늘려야 한다”고 했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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