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 이번엔 정부가 망가져… 쓸수 있는 카드 별로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6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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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존 재정위기 확산… 아시아 증시 급락



유로존의 붕괴 위기가 절정을 향해 치닫는 요즘 세계 금융시장은 4년 전 모습과 판박이다. 생사의 기로에 놓인 유럽의 부실 은행들은 예금 이탈을 막기 위해 사활을 걸었고 유로화 가치의 추락을 우려한 중앙은행들은 유로화 투매에 나섰다. 안전자산 쏠림 현상은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직전보다 더 극심하게 나타나고 있다.

금융시장 자금의 대이동이 벌어지는 동안 각국 정부와 기업들은 앞으로 닥칠 경기침체의 공포를 숨죽이며 기다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한 달이 어떻게 전개되느냐가 세계 경제와 금융시장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 6월 한 달이 최대의 고비

지난해 8월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으로 촉발된 시장의 위기는 올 초 유럽중앙은행(ECB) 등의 대규모 유동성 공급으로 진정되는 듯했다. 얼어붙은 경기도 올 하반기부터 점차 회복될 것이란 낙관론이 조심스럽게 나왔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는 순식간에 돌변했다. 독일 주도의 긴축정책에 대한 남유럽 국가들의 저항이 커지고 문제 해결방안에 대한 각국의 정치적 입장이 맞서는 가운데 그리스 문제가 불거졌다.

이어 유럽에서 금기(禁忌)처럼 인식되던 ‘유로존 붕괴론’이 터져 나오고 미국 중국의 경제지표가 잇달아 나빠지면서 투자자들의 심리는 돌이킬 수 없이 악화됐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한 달에 유로존의 운명이 걸려 있다고 보고 있다. 6일 ECB의 통화정책회의, 7일 스페인의 국채 발행, 17일 그리스의 총선 등 굵직한 이벤트가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김득갑 삼성경제연구소 글로벌연구실장은 “ECB 회의에서 금리 인하나 3차 장기대출 프로그램(LTRO) 결정 등 뭔가 카드가 나오지 않으면 상황이 심각해질 것”이라며 “여기에 스페인 국채금리가 7%를 넘거나 국채 발행에 실패라도 하면 정말 최악의 국면으로 치달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의 억만장자 투자자인 조지 소로스는 “앞으로 독일 경제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유럽의 채무위기 해결을 위한 시간은 3개월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고 경고했다.

문제는 각국이 위기에 대응해 사용할 수 있는 카드가 별로 없다는 점이다. 2008년엔 정부가 재정을 동원해서라도 경기를 부양할 수 있었지만 지금 각국 정부는 빚더미에 올라앉아 있거나 여력이 넉넉지 않다. 심지어 유로존 국가들은 단일통화체제여서 환율과 금리에 대한 통제권마저 없다. 윤인구 국제금융센터 연구원은 “2008년에는 은행이 망가져서 정부가 나섰지만 이번엔 정부가 망가졌기 때문에 더는 경기부양을 하는 것도 어려워졌다”며 “금리도 낮출 만큼 낮췄고 국채를 더 발행하기도 어려워 이제 해볼 만한 대책이 없다는 절망감에 빠져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미 고용지표가 부진한 것은 유럽이 과감한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비판만 한 채 별다른 대책을 언급하지 못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는 최후의 카드로 꼽히는 3차 양적완화(QE3)를 만지작거리고 있지만 이달에 집행될지는 불투명하다.

○ 한국도 대비는 많이 했지만

4년 전과 비교하면 한국의 외화건전성은 상당히 양호한 편이다. 지난해 여름 이후 은행권은 금융당국의 권고에 따라 외화유동성 확보에 공을 들여왔다. 현재 시중은행들의 유럽계 차입금은 549억 달러로 전체의 27% 수준. 지난해 6월 말(33%)에 비해 줄어든 상태다. 3월 말 현재 한국의 총 대외채무(외채)에서 단기외채가 차지하는 비중도 33.1%로 12년 만에 가장 낮다.

그러나 유로존 충격에 올해 들어 외환보유액이 처음 감소하는 등 악영향은 가시화되고 있다. 4일 발표된 5월 말 외환보유액은 역대 최고치던 전달에 비해 59억7000만 달러 줄어든 3108억7000만 달러로 집계됐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한국이 최근 몇 주간 원화 방어를 위해 70억 달러 상당의 보유 외환을 매각한 것으로 추산했다.

국내 은행들은 외화 차입처를 아시아 등 비(非)유럽권으로 돌리고 있다. 부실이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하면 유럽 은행들이 채권 회수에 나설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4일 공매도에 대한 감독 강화, 초장기 금융 상품에 대한 세제 지원 등 시장 안정 방안을 발표했다.

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유로존#신용등급#삼성경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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