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김정은 시대]정부 간접조의에도 北 “무례하다” 생떼… 김일성때 판박이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24일 03시 00분


코멘트

北, 17년전 김일성 ‘조문파동’ 재연 노려

23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조문(弔問)과 관련해 북측 매체가 남측을 향해 내놓은 반응은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당시와 놀랄 정도로 비슷하다. ‘데자뷔(기시감)’를 느낄 정도다. 같은 방식을 이용해 남한 사회를 분열해 보겠다는 의도가 여실히 드러난다.

○ 17년 전과 방법·표현 모두 비슷해

북측은 19일 김 위원장의 사망 소식을 전하며 “외국의 조의대표단은 받지 않는다”고 밝혔다. 하지만 23일 북한의 대남선전용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는 ‘동포애의 정’을 감안해 남한 조문단에 대해서는 예외적으로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이 사이트는 북한의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가 운영하고 있다.

조평통은 1994년 7월 14일 발표한 대변인 담화문에서도 “남한의 조문단이나 조문객들을 따뜻한 동포애의 정으로 맞이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남측 조문단의 신변을 보장하고 편의를 제공하겠다는 내용도 공통적으로 들어갔다. 당시에도 외국 조문단은 사절하면서 남한만 예외로 했다.

1994년 7월 9일 김일성 사망 소식이 발표된 뒤 남한에서는 조문 여부를 놓고 논란이 벌어졌다. 당시 조문을 반대하던 측이 내세운 이유 중 하나가 ‘북한이 조문단을 받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북측은 이런 제약을 풀어줌으로써 남남(南南)갈등을 부채질했다. 이후 야당과 재야 단체, 대학생 단체 등에서 조문단 파견을 강행하려 하자 보수층이 격렬히 반대하고 정부가 이를 금지하면서 ‘조문 파동’으로 비화했다. 북측의 전략이 어느 정도 성공한 셈이다.

당시 정부의 조문 금지에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정부가) 애도의 뜻조차 표시하지 않은 것은 상식 이하의 불손하고 무례한 행위”라며 “남조선 통치 집단의 대범죄를 단단히 결산할 것”이라고 비난했다. 23일 우리 민족끼리도 “초보적인 예의와 인륜도덕도 모르는 자들에 대해서는 단단히 계산하게 될 것이며 두고두고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비슷한 위협을 했다.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전형적인 북측의 남남갈등 유발, 통일전선전술 차원의 접근법”이라며 “1994년과 달리 최소한의 변화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 명확해졌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북측의 의도가 성공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이번에는 간접적으로나마 김정일 사망에 대해 애도를 표했고 조문 방북도 일부 허용한 것이 차이점이다. 진보 진영의 조문 열기(?)도 17년 전에 비해 훨씬 낮다는 평가다.

○ “조문 확대 불가” 정부 태도 확고

김정일 조문 문제는 정리돼 가는 분위기다. 대표적인 대북지원단체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는 진보·보수·중도 진영을 아우르는 10명 안팎의 조문단을 파견하는 문제를 정부와 논의해 왔다. 정부가 남남갈등을 막기 위해 ‘답방 차원의 조문만 허용한다’는 원칙을 수정해 민화협의 조문 방북 허용을 고심한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하지만 류우익 통일부 장관은 이날 국회 답변에서 이 문제에 대해 “정부가 여러 가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고심 끝에 이희호·현정은 여사 일행만 조문을 하도록 한 것”이라며 불허 방침을 재확인했다. 민화협 측도 “정부 반대를 무릅쓰고 방북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가 40여 명 규모의 조문단을 구성하기로 결정하고 통일부에 방북을 신청했지만 통일부는 “현재로서는 허용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희호 여사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조문 방북 문제는 조문단 구성을 놓고 막바지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방북 일정은 26∼27일이 유력하다. 이들이 북한을 방문하면 북한의 후계자 김정은과 면담이 이뤄질 것으로 보여 당국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김태웅 기자 piba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