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불법 이민자 추방법’ 두고, 연방대법-고법 다른 판단에 혼란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3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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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시행 취소를” 긴급 요청에
대법, 법 타당성 판단없이 수용 안해
몇시간뒤 고법 “법 시행 보류” 판결
“대선 이슈 대립 확산시켜” 지적 나와

11월 미국 대선의 주요 의제인 이민을 둘러싼 미국 내 갈등이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갈등을 해결해야 할 사법부가 이민 의제를 놓고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도 분열과 대립을 확산시킨다는 비판이 나온다.

보수 우위인 미 연방대법원은 19일 “주(州)정부 직권으로 불법 이민자를 추방할 수 있다”고 규정한 텍사스주 이민법의 시행을 취소해 달라는 조 바이든 행정부의 ‘긴급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몇 시간 후 하급심인 연방항소법원(고등법원)은 “해당 법의 시행을 보류하라”고 판결했다. 이처럼 각급 법원의 판단이 엎치락뒤치락하면서 해당 법으로 인한 논쟁과 대립만 커지는 모양새다. 특히 이민정책의 집행 권한이 연방정부와 주정부 중 어디에 있느냐를 둘러싼 논란이 거세다.

트럼프, 멜라니아와 투표장에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왼쪽)과 부인 멜라니아 여사가 19일 플로리다주 팜비치에서
 취재진과 대화하고 있다. 두 사람은 이날 공화당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플로리다주 프라이머리(예비선거)에서 투표했다. 그간 언론 
노출을 피했던 멜라니아 여사는 남편의 재선 유세에 참여하느냐란 질문에 “지켜봐 달라”며 즉답을 피했다. 팜비치=AP 뉴시스
트럼프, 멜라니아와 투표장에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왼쪽)과 부인 멜라니아 여사가 19일 플로리다주 팜비치에서 취재진과 대화하고 있다. 두 사람은 이날 공화당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플로리다주 프라이머리(예비선거)에서 투표했다. 그간 언론 노출을 피했던 멜라니아 여사는 남편의 재선 유세에 참여하느냐란 질문에 “지켜봐 달라”며 즉답을 피했다. 팜비치=AP 뉴시스
대선에서 맞붙을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민 문제를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불법 이민자를 ‘동물(animal)’로 지칭하면서 재집권 시 강력 규제를 천명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민자의 나라’라는 미국의 역사적 정체성을 무시할 수는 없고 불법 이민자도 최소한의 인간적 대우는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 대법원-항소법원 판단 오락가락

대법원은 이날 주 당국이 직권으로 불법 이민자를 체포, 구금, 추방할 수 있도록 한 텍사스주 이민법 ‘SB4(Senate Bill 4)’의 집행정지 명령을 해제했다. 야당 공화당 소속인 그레그 애벗 텍사스 주지사가 지난해 12월 서명한 이 법은 당초 5일부터 시행될 예정이었다.

바이든 행정부는 ‘불법 이민자 추방은 연방정부 고유 권한’이라며 연방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이 주장을 받아들여 법의 효력을 정지시켰다. 그러나 2심을 맡은 제5 연방항소법원은 판결 전까지 법 시행을 일단 허용하는 ‘행정유예(administrative stay)’ 결정을 2일 내렸다.

이에 바이든 행정부가 법의 시행을 막아달라고 대법원에 긴급 요청했지만 이날 대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법의 타당성은 판단하지 않고, 항소법원에 돌려보냈다. 몇 시간 뒤 항소법원은 “법 시행을 보류하라”며 대법원과 다른 결정을 했다. 법 자체의 타당성에 대한 구두 변론은 20일 진행한다. 대법원과 항소법원의 이날 판결은 모두 법 시행 보류에 대한 결정일 뿐이어서 법에 대한 최종 판결이 나올 때까지 사회적 혼란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대법관 9명 중 6명이 보수 성향인 대법원은 최근 잇따라 보수적인 성향의 판결을 내리고 있다. 대법원은 1973년부터 49년간 유지됐던 연방 차원의 낙태권을 2022년 6월 폐기했다. 지난해에는 1961년 이후 대학 입시, 공공기관 채용 등에서 비(非)백인을 우대해 온 ‘소수인종 우대 정책(어퍼머티브 액션)’도 위헌 판결했다.

이날 판결이 이민 정책에 대한 연방정부의 권한을 인정해 온 기존 판례를 뒤집는 결정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앞서 2010년 애리조나주가 불법 체류 의심자를 조사해 구금할 수 있도록 하는 이민법을 통과시키자 당시 대법원은 위헌 판결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대법원의 이념 성향이 보수 우위로 바뀌면서 이런 기류에 변화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 공화당 우세 州 , 자체 이민법 제정

바이든 “이민 정책은 연방 권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이 19일 네바다주 리노에서 아이를 안은 지지자와 
만나고 있다. 지난해 말 텍사스주가 자체적으로 불법 이민자를 추방하겠다는 법안을 내놓자 바이든 행정부는 “이민 정책은 연방정부 
권한”이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날 연방대법원과 항소법원이 이 사안에 정반대 판결을 내놓으면서 이민 의제를 둘러싼 혼란과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리노=AP 뉴시스
바이든 “이민 정책은 연방 권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이 19일 네바다주 리노에서 아이를 안은 지지자와 만나고 있다. 지난해 말 텍사스주가 자체적으로 불법 이민자를 추방하겠다는 법안을 내놓자 바이든 행정부는 “이민 정책은 연방정부 권한”이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날 연방대법원과 항소법원이 이 사안에 정반대 판결을 내놓으면서 이민 의제를 둘러싼 혼란과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리노=AP 뉴시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이 텍사스를 넘어 공화당 우세 지역인 다른 주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아이오와주는 이날 미국에서 추방되거나 미국 입국이 거부된 이민자가 아이오와주를 방문하는 것을 범죄로 규정해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앞서 15일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 역시 추방된 이민자가 플로리다주를 다시 찾으면 중범죄로 처벌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오랫동안 연방정부의 영역이었던 이민 문제를 공화당 소속 주지사들이 직접 다루려는 의지가 커졌다”고 평했다.

국경을 맞댄 멕시코와의 외교 문제로 비화할 조짐도 보인다. 멕시코는 텍사스주가 불법 이민자를 추방해도 이들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며 “주정부가 아닌 연방정부끼리 협상할 문제”라고 밝혔다.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
김보라 기자 purple@donga.com
#미국#불법 이민자 추방법#연방대법원#고등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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