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경제난에 ‘탄소중립’ 속도조절…‘1호 선언’ 스웨덴도 예산 삭감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9월 26일 17시 05분


코멘트
게티이미지코리아
게티이미지코리아
온실가스 순배출 ‘0’을 목표로 하는 탄소중립 정책을 선도하던 유럽 국가들이 관련 정책을 완화하거나 예산을 줄이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인플레이션으로 경제가 어려워지며 가계와 기업 부담이 커지고 있어 탄소중립이라는 큰 방향은 유지하되 달성 시기는 늦추는 속도조절에 나선 것이다. 다만 영국처럼 총선이 임박한 국가에서는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환경 정책이 기후변화 완화에 역행하는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 EU “배기가스 규제 완화 논의”
유럽연합(EU)은 2025년 7월 시행하려던 새로운 자동차 배기가스 규제를 일부 완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EU 이사회는 25일 개인 승용차 및 밴 등 일부 차량에 대해 기존 배출가스 규제인 ‘유로 6’를 유지한다고 홈페이지에 밝혔다. 다만 브레이크와 타이어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 규제를 포함하는 방안은 초안대로 규제를 강화한다.

당초 EU 집행위원회가 발의한 초안에 따르면 개인 승용차 및 밴도 새로운 배출가스 기준인 ‘유로 7’에 따라 질소산화물(NOx) 같은 오염 물질 배출량을 줄여야 했다. 하지만 논의 과정에서 27개 회원국 모두 이를 거부하자 이사회가 규제를 완화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 방안은 EU 이사회, 집행위, 유럽의회 3자 협상에서 승인돼야 시행된다. 따라서 최종적으로는 수정될 가능성도 있지만 유럽 자동차 업계가 규제 강화에 크게 반발하고 있어 유지될 확률이 큰 것으로 전망된다. 자동차 업계는 유로 7 규제를 준수하느라 생산비용이 더 들고 생산과정도 까다로워져 다른 국가 자동차 업계와의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탈리아 프랑스 체코 등 8개국도 유로 7 규제가 시행되면 업계 경쟁력 저하를 부른다고 주장했다.

● ‘탄소중립 우등생’ 스웨덴, 기후변화 예산 삭감
2017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탄소중립 목표를 선언한 스웨덴도 정책 속도조절 방침을 밝혔다. 고물가로 민생경제가 위기에 처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스웨덴 연합정부는 20일 내년 예산안에서 기후 및 환경 대책 자금을 2억5900만 크로나(약 316억 원) 삭감하고 휘발유와 경유에 대한 유류세를 감면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스웨덴 정부는 2030년 탄소배출 감축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유류세 인하로 세수는 약 65억 크로나(7934억 원) 줄어들 것으로 추산된다.

2045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한 ‘탄소중립 우등생’ 스웨덴마저 관련 예산을 깎고 세수 감소까지 감수하겠다고 한 건 극심한 인플레이션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엘리사베트 스반테손 스웨덴 재무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지금은 많은 국민이 (고물가로 인해) 매우 힘든 시기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스웨덴 정치권에서는 ‘기후변화 (대처) 강국’이라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는 반발도 상당하다. 야당인 중앙당 리카드 노딘 기후 및 에너지 대변인은 다른 정당들과 함께 기후변화 관련 예산이 삭감된 내년 예산안 처리를 막기 위해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노딘 대변인은 “크리스마스 이전에 정부가 기후행동 계획을 바로잡지 않으면 기후 에너지 장관 불신임안을 발의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 역시 이날 휘발유·경유차 신차 판매 금지 시기를 2030년에서 2035년으로 5년 미룬다고 발표했다. 수낵 총리는 이번 조치가 독일 프랑스 등 유럽연합(EU) 주요 국가들 및 미국 캘리포니아주, 뉴욕주 등과 같은 일정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르면 내년 총선을 앞두고 기후변화 정책에 반대하는 여론을 다독이려는 ‘선거용’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또 전기차 기업들도 불만을 품고 있다고 영국 언론은 전했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