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무인기-러 전투기, 작전중 공중충돌… 냉전 이후 처음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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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무인기 흑해서 러전투기에 추락
美 “러 위협비행” 러 “美의 도발”

우크라이나 남부 흑해 상공을 정찰 중이던 미군 무인기(드론)가 14일(현지 시간) 러시아 전투기와 충돌해 추락했다. 미국과 러시아 군용기가 군사작전 중 충돌한 것은 냉전 이후 처음이다.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미-러가 전장에서 처음으로 직접 충돌한 것이기도 해 양국 간 군사적 긴장이 고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군 유럽사령부는 이날 “오전 7시 3분경 러시아 수호이(Su)-27 전투기가 흑해 상공 국제공역에서 비행하던 무인기 MQ-9 프로펠러에 충돌해 MQ-9를 추락시켰다”고 밝혔다.

미군 당국에 따르면 루마니아 공군기지를 떠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남쪽 120km 상공에서 정찰 임무를 수행하던 MQ-9에 인근에서 비행하던 수호이-27 2기가 다가와 30∼40분간 근접 비행을 하며 차단작전을 폈다. 수호이-27은 드론에 장착된 카메라와 센서 같은 정찰 장비를 훼손하기 위해 MQ-9 위에서 날며 연료(항공유)를 뿌렸다. 이 과정에서 전투기와 부딪쳐 프로펠러가 절단되자 MQ-9를 원격조종하던 미군이 바다로 추락시켰다는 것이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국제수역 상공에서의 위협비행으로 인한 충돌은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라며 “러시아의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미 국무부는 이날 아나톨리 안토노프 주미 러시아대사를 초치해 항의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러시아 전투기는 공중전 무기를 사용하지 않았으며 무인기와 접촉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우크라이나 ‘특별군사작전’(침공 작전)을 위해 러시아가 설정한 비행제한구역으로 미 무인기가 들어온 데 따른 대응으로 전투기를 출동시켰으나 MQ-9가 자체적으로 조종력을 상실하고 추락했다는 것이다.

또 앞으로도 미군의 흑해 상공 정찰을 저지하겠다며 맞섰다. 안토노프 대사는 성명을 통해 “우리는 (미국에) 특별군사작전 구역인 이 지역에 진입하지도, 침투하지도 말라고 경고했다”면서 “이 사건은 (미국의) 도발”이라고 말했다고 러시아 관영 타스통신이 15일 전했다. 다만 그는 “우리는 미국과 러시아 사이의 어떤 대립도 원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美-러, 우크라戰 전략거점 ‘흑해 대립’… 우발적 충돌 위험 커져


美 무인기, 러 전투기에 추락

미군 “러 전투기, 美무인기 위협
연료 뿌리고 충돌해 추락시켜”
러 “美, 우리 영토 인근 비행 도발”


미군 무인기가 흑해 상공에서 러시아 전투기와 충돌해 추락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놓고 대립해 온 미-러 간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은 이번 사태에 대해 “국제수역에서 발생한 명백한 국제법 위반”으로 규정했다. 또 흑해 상공에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기 위한 정찰비행을 지속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반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위해 자국이 설정한 임시공역을 침범한 “미국의 도발”이라고 맞받아쳤다.

● 美 “흑해 정찰활동 차단하려는 러의 도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4일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한 캘리포니아 몬터레이파크에서 총기 폭력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몬터레이파크=AP 뉴시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4일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한 캘리포니아 몬터레이파크에서 총기 폭력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몬터레이파크=AP 뉴시스
미 국방부는 “14일 오전 7시 3분경 러시아 수호이(SU)-27 전투기 1대가 미군 무인기 MQ-9 리퍼 드론의 프로펠러를 강타해 공해상으로 추락시켰다”고 밝혔다. 팻 라이더 국방부 대변인은 “(러시아 전투기는) 충돌 전 MQ-9 앞에서 여러 차례 연료를 뿌리며 비행했다”며 “무모하고 비전문적인 비행”이라고 비판했다.

러시아 전투기와 충돌한 MQ-9 리퍼 드론은 ‘하늘의 암살자’로 불린다. 4발의 헬파이어 미사일을 장착하고 있어 요인 참수 작전에 주로 활용된다. 다만 미군은 충돌 당시 이 드론이 정찰임무를 수행 중이었다고 밝혔다. SU-27 전투기는 러시아 공군의 주력 전투기 중 하나다.

미국 내에선 이번 사태가 러시아군의 전략적 요충지인 흑해 상공에서 벌어진 데 주목하고 있다. 흑해는 러시아가 2014년 우크라이나로부터 강제 병합한 크림반도와 맞닿은 바다다. 러시아는 이 지역을 통해 곡물을 수송하는 우크라이나 선박을 봉쇄하고 있다.

러시아가 이 지역에서 일부러 도발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한 미군의 흑해 상공 정찰활동을 차단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최근 우크라이나군이 미국에서 지원받은 드론 등을 활용해 러시아 본토와 크림반도 인근을 공격하자 러시아는 “미국이 정찰자산을 활용해 우크라이나에 표적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고 비판해왔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브리핑에서 “만약 러시아의 이번 행동이 미국이 흑해 상공에서 비행하는 것을 막으려는 시도라면 그것은 실패할 것”이라며 “미국은 흑해 상공에서 비행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 의회에선 강력한 대응을 촉구하고 나섰다. 하원 군사위원장인 공화당 소속 마이크 로저스 의원은 “블라디미르 푸틴(러시아 대통령)과 추종자들이 우리의 결의를 시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러 “러 영토 인근 침입한 美의 도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4일 울란우데 항공훈련장을 방문해 헬리콥터 시뮬레이터 앞에 앉아 시뮬레이션 조종을 해보고 있다. 울란우데=AP 뉴시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4일 울란우데 항공훈련장을 방문해 헬리콥터 시뮬레이터 앞에 앉아 시뮬레이션 조종을 해보고 있다. 울란우데=AP 뉴시스
러시아는 이번 사태의 책임을 미국에 돌렸다. 러시아 국방부는 “우리 전투기는 탑재된 무기를 사용하거나 무인기와 충돌하지 않고 안전하게 복귀했다”며 “미국 무인기가 급작스러운 기동으로 통제 불능 상태에 빠졌고 얼마 후 수면에 충돌했다”고 주장했다.

이날 미 국무부에 초치된 아나톨리 안토노프 주미 러시아대사는 러시아 관영 리아노보스티통신에 “미국과의 대결을 모색하는 것은 아니다. 러시아는 미국과의 실용적인 관계를 원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미국 항공기가 러시아 국경 인근을 비행해선 안 된다”며 “러시아 무인기가 갑자기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 근처에 나타나는 것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라고 강조했다.

미국과 국제사회는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안토노프 대사는 그런 크림반도를 자국의 영토라고 규정하고, 이를 감싸고 있는 흑해를 ‘러시아 국경 인근’으로 표현하며 미군의 정찰활동에 경고를 보낸 것이다.

이런 가운데 폴란드는 러시아가 ‘레드라인(금지선)’으로 경고했던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투기 지원 계획을 밝혔다. 이에 따라 러시아와 서방의 우발적 충돌 위험이 커지고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데이비드 버거 미 해병대 사령관은 미군 무인기 추락과 관련해 “군사적 소통 채널이 닫힌 상황에서 러시아와 중국의 전투기나 선박이 유럽과 태평양에서 (미국과) 충돌하는 것이 가장 우려스럽다”라고 말했다.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미국#무인기#러시아#전투기#공중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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