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무대 ‘라스트 댄스’에 나섰던 리오넬 메시(35·아르헨티나)가 사우디아라비아의 모래바람을 만나 첫 스텝부터 꼬여버렸다. 월드컵 우승 트로피만 빼고 모든 걸 다 가진 ‘축구의 신’ 메시가 이끄는 아르헨티나는 남은 조별리그 일정이 험난해졌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3위인 아르헨티나가 22일 카타르 루사일 아이코닉 스타디움에서 열린 사우디아라비아(51위)와의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C조 1차전에서 1-2로 역전패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아르헨티나가 월드컵 본선에서 패한 팀 가운데 FIFA 랭킹이 가장 낮은 팀이다. 미국의 스포츠 전문 매체 ESPN은 아르헨티나의 패배를 두고 “우리는 카타르 월드컵에서 첫 번째 충격을 경험했다”고 전했다. C조에는 13위의 멕시코, 26위의 폴란드 등 강팀이 많아 아르헨티나는 조별리그 통과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아르헨티나의 출발은 나쁘지 않았다. 메시는 전반 2분 상대 골문 앞에서 볼에 탄력을 실어 날리는 매끄러운 왼발 슛으로 빠르게 예열을 마쳤다. 그리고 8분 뒤인 전반 10분 페널티킥으로 골망을 흔들며 선제골을 넣었다. 팀 동료 레안드로 파레데스가 얻은 페널티킥으로 메시의 월드컵 통산 7번째 골이었다. 하지만 통산 3번째이자 1986년 멕시코 대회 이후 36년 만의 정상 도전에 나선 아르헨티나의 득점포는 여기까지였다.
아르헨티나는 후반 들어 5분 사이에 연속 실점을 했고 이를 다시 뒤집지 못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후반 3분 공격수 살리흐 샤흐리(29)가 동점 골을, 후반 8분 역시 공격수인 살림 다우사리(31)가 역전 골을 터트렸다. 이후 아르헨티나는 상대 골문을 뚫기 위해 파상공세를 퍼부었으나 수문장 무함마드 우와이스(31)의 신들린 선방에 막혀 고개를 숙여야 했다. 아르헨티나는 사우디아라비아가 A매치(국가대항전)에서 꺾은 랭킹이 가장 높은 팀으로 기록됐다. 에르베 르나르 사우디아라비아 감독은 “축구에서는 때로 완전히 미친 일들이 일어나기도 한다. 오늘 승리로 20분 정도는 즐길 수 있겠지만 거기까지다”라며 “우리는 아직 두 경기가 더 남아 있다”고 했다.
경기 후 FIFA가 공개한 ‘매치 데이터’에 따르면 이날 사우디아라비아는 볼 점유율에서 24%-51%(나머지 25%는 양 팀 경합 상황), 슈팅 수 3-14, 유효슈팅 수 2-6 등 경기 내용 면에선 일방적으로 밀렸다. 하지만 21개의 파울을 기록하는 등 육탄전에 가까운 방어로 골문을 지켜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날 옐로카드 6장을 받는 출혈이 있었지만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리자 몇몇 선수는 심판을 향해서도 웃으며 박수를 보냈다.
이날 경기장에는 마지막 월드컵 무대에 나선 메시를 보려는 많은 팬들이 몰리면서 8만8012명이 관중석을 채웠다. 메시의 등번호 10번이 새겨진 아르헨티나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응원하던 카타르 관중도 경기가 끝난 뒤엔 드라마 같은 업셋(약한 팀이 강팀을 꺾는 것)을 보여준 사우디아라비아 선수들을 향해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관중석 대부분이 하늘색 줄무늬 유니폼으로 채워져 마치 아르헨티나의 안방구장 같은 분위기였다.
아르헨티나는 이날 예상치 못한 패배로 A매치 무패 행진도 중단됐다. 36경기 무패(25승 11무) 행진을 기록 중이던 아르헨티나가 이날 패하지 않았다면 이탈리아가 보유한 역대 최다인 37경기 연속 무패(28승 9무) 기록과 타이를 이룰 수 있었다. 메시가 골을 넣고도 아르헨티나가 진 건 2009년 11월 15일 스페인과의 A매치 1-2 패배 이후 13년 만이다. 메시는 페널티킥 선제골로 네 번의 월드컵 대회(2006, 2014, 2018, 2022년)에서 득점한 최초의 아르헨티나 선수로 이름을 올렸지만 팀 패배로 빛이 바랬다. 메시는 이번 대회가 5번째 월드컵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