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도안 한마디에 리라화 가치 급반등… 금융위기 재울지는 의문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2월 22일 03시 00분


코멘트

“리라 예금 보호” 방어 나섰지만
저금리 정책 고수… 반등 지속 의문
지난달 소비자물가 21.3% 올라
민심 달래려 “최저임금 50% 인상”



터키 리라화 가치가 연일 사상최저치를 경신하며 금융위기 우려가 높아지자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사진)이 “리라 예금을 보호할 새로운 금융 수단을 마련하겠다”며 통화가치 방어에 나섰다. 그는 줄곧 고금리가 경제성장에 방해가 된다며 중앙은행에 금리인하를 압박했고, 그의 이런 태도가 리라 하락을 가속화한다는 평가가 많았다. 에르도안의 태도 변화에 리라 가치 또한 급반등했다.

20일(현지 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에르도안 대통령은 18일 TV 연설에서 “리라화 투자 수익률이 떨어질 것을 우려해 외화를 사들이던 국민들의 우려를 덜어줄 새로운 금융수단을 제공하겠다. 앞으로 국민들이 리라화 예금을 외화로 바꿀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 수단이 어떤 방식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터키 중앙은행은 9월부터 이달까지 넉 달 연속 기준금리를 낮췄다. 낮은 금리가 수출과 고용에 유리하다고 믿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중앙은행장을 계속 경질하며 거듭 금리인하를 압박한 탓이다. 이후 미국 달러화 대비 리라 가치가 계속 하락하자 국민들 또한 자산 보호를 위해 리라 예금을 잇달아 외화로 바꿨다. 이로 인해 가뜩이나 낮은 리라 가치가 더 떨어지는 악순환이 나타나자 에르도안 정권이 대책 마련에 나선 것이다.

예금보호 조치 발표 전 리라 가치는 17일 1달러에 18리라를 웃돌았으나 20일에는 장중 12.28리라까지 떨어졌다. 블룸버그통신은 이 같은 통화가치 상승이 리라 가치를 집계한 1983년 이후 38년 만에 가장 큰 상승폭이었다고 전했다.

다만 반등이 계속될지는 불투명하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예금자 보호와 관계없이 저금리 정책은 고수할 뜻을 밝힌 데다 고물가, 심각한 빈부격차, 낙후된 경제구조 등 통화가치 하락을 부추기는 요인 또한 해소되지 않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18일 연설에서 “금리를 낮추면 몇 달 안에 물가가 떨어지는 것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저금리가 물가 상승을 부추긴다는 현대 경제학계의 정설과 다른 주장을 편 셈이다.

그가 연이은 통화가치 하락 속에서도 기준금리 인하를 압박하는 이유로 수출 극대화를 통해 지지율을 높여 사실상 종신집권에 나서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2003년 총리로 집권한 그는 법을 바꿔 대통령에 올랐고 반대파를 대대적으로 탄압하며 유례없는 장기집권을 이어오고 있다. 에르도안 정권은 11월 소비자물가가 21.3%를 기록하며 국민들의 살림살이가 어려워지자 동요하는 민심을 달래기 위해 내년부터 월 최저임금을 지금보다 50% 높은 4250리라(약 33만 원)로 올린다고 밝혔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리라화 하락이 일명 ‘악마의 잼’으로 불리는 이탈리아산 초콜릿잼 ‘누텔라’의 공급난 또한 야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누텔라는 주로 터키산 헤이즐넛으로 만들어진다. 세계 헤이즐넛 생산량의 70%를 차지하는 터키 농가는 최근 3배 이상 치솟은 수입 비료 가격 등을 감당하지 못해 헤이즐넛 생산을 대폭 줄이고 있다.


카이로=황성호 특파원 hsh0330@donga.com
#터키 리라화#터키 대통령#금융위기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